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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 게시판에서 펌 - 마지막으로 나주에 남길말... 이성훈신부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5 조회수608 추천수3 반대(0) 신고
마지막으로 나주에 남길말...
 
작성자   이성훈  쪽지 번  호   116810
 
작성일   2008-01-25 오전 1:38:18 조회수   38 추천수   0
 
요즘 몇일간
 
나주에 대해서 별 말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공지문을 보면서 새삼 마음이 심란해 집니다.
 
...
 
최주교님의 말씀은 마지막 한 문단에 정리되어 있네요...
 
...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총으로 이들이 하루빨리 자신들의 과오를 깨닫고
 
가톨릭교회로 돌아와 화해의 성사를 통하여 화합과 일치의 축복을 누리며 올바른 경신례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구세주의 모친이시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그리고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공지문이 하고자 하는 말은 누구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라 명하는 것임을 마음속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원해서였건, 원하지 않아서였건
 
이 모든 일로 관련해서 상처주고 상처받았던 것에대해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해
 
용서와 자비, 화해의 은총을 청해봅니다.
 
...
 
공지문의 참 뜻을 새기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밖을 나가있는 양을 아프게 바라보는 주교님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래는 이순의인 제가 달은 꼬리글 모음입니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이성훈 신부님의 허락은 받지 않았으나 신부님께 이해를 구합니다.※
 
이순의 (2008/01/25) : 교회의 고뇌와 수 많은 교우들의 혼란과 수 없이 많은 날들과 대화와 언쟁들을 돌아 보면서 교회가 그들을 배척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배척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말입니다. 지구의 가톨릭 교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 보아야지요.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인간성의 나약한 교만들이 고개를 들고 머리를 풀어 헤칠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아닌 교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무엇이 참 평화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보면 풀어 헤치고자 했던 머리를 잘 빗어 단정히 묶고 기도하며 기다릴 때 성령께서는 임하신다는 체험적 신앙을 누리게 됩니다.
 
장홍빈 신부님은 제 개인적으로 세례신부님이십니다. 나주문제가 있을 때마다 장신부님의 근황을 살피게 되고, 소임을 맞지 못하고 대기 상태의 사제 직분을 안타까워하며 참으로 여러 해를 신부님을 기억하고 기도 하게 되었지요. 오늘의 소식은 장 신부님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한답니까?! 신부님의 선택은 교회의 교도권에 대하여 우리 평신도들 보다 더 잘 아시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하는 입장에서는 장 신부님을 따라서 교회 밖으로 나갈 마음이 없으니 어찌합니까?! 하느님의 영역에서 보면 인간이 내리는 어떠한 권력, 그것이 교도권이라 해도 완전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나에게 해 주기를 바란 것이 있었다면, 또 내가 교회에 속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또는 내 공동체는 교회에 어떤 모습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물며 본당에서 봉사하는 작은 신심 단체장을 하더라도 제 주머니 털어가며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그 기적을 믿으라고 한다면, 믿어드릴 수는 있습니다. 어차피 신앙은 일방적인 믿음에 뿌리가 있 습니다. 그러나 믿다가 보니 의혹이 제기 된다면 신앙의 뿌리는 흔들리게 되고, 아무리 말려도 믿음을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투명 한 것을 투명하게 했어야지요.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절명한 부분들 말고, 신의 이름으로 얻은 것을 신께로 돌려 드릴 수 없었던 많은 의혹들을 스스로 밝혀 살았더라면 그들이 보지 않고도 믿으라는 강요를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것이지요. 보지 않고도 믿는다는 데는, 보이는 것도 믿게 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교회 공동체가 보이는 부분에 의혹을 제기 했을 때, 그 의혹에 대하여 밝혀 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겠다고 가톨릭이라는 공동체에 스스로 머물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누구도 그들을 밀어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수 년의 세월과 대화와 다툼과 증거들 사이에서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만을 요구 하였지, 인간이 모여 공유하는 보이는 하느님의 개입에 대하여 투명성을 재시하지 않거나 제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려진 그들의 선택일 것입니다.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려 보는 것 외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그러나 보이 지 않는 것을 믿으라 하면 믿어 줄 수는 있겠지요. 그렇다면 보이는 부분에 대한 믿음을 그들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부하는 것은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물론 더 복잡한, 일반 평신도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합니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그렇다면 보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기적이라는 것만 하느님의 것이고, 보이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얻은 모든 이익에 대하여만 카이사르의 것입니까?
 
저는 가톨릭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믿지만 보이는 것은 더욱 분명하게 믿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의 결과를 얻기까지 우리 교회는 너무나 큰 고통을 겪어 왔고 겪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기다리며 지켜 볼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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