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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8)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이 가져가는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8 조회수45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3년 12월 26일 금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18)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이 가져가는데.......

                                      이순의

                                 


ㅡ꼭 해야 하는 산타ㅡ

주님의 이름으로 죽어버린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축일을 맞으며 상당히 혼란스럽다. 일상을 주님의 이름으로 죽겠다고 살고자 노력 했었던 나는 내가 사는 방식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방식인지 의문을 갖기 시작 했고, 그 의문과 함께 내가 한다는 주님의 이름을 거는 모든 신앙의 행위들을 중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이 순간의 칩거조차도 주님의 뜻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때는 주를 마주 대할 날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나만이 해 온 일이 있다. 장애를 가졌거나 상황이 상처가 많아서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둔 가정에 산타가 되어 주는 일이다. 초등부 성탄 미사가 끝나면 산타께서 주시는 한 아름의 과자 한 봉지씩을 받아가는 아이들의 맨 뒷줄에 서서 나 혼자만 몽땅 과자를 받는다. 솔직히 과자봉지는 아이들만 탐나게 생긴 것은 아니다. 어른도 받고 싶을 만큼 푸짐하고 온갖 색깔들이 섞여 유혹을 한다. 그런 과자를 아이들만 타기로 했는데 어른인 내가 한 봉지도 아니고 몽땅 갈취를 하다 보니 그에 따른 후유증이 항상 발생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이 주면서 왜 우리는 한 봉지도 안줘요?"

"성당에 안 온 아이들은 안 줘야지 왜 줘요? 우리 옆집 애도 못 왔는데 그 애 것도 주세요."

 

내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자모들과 서로 절친한 교분이 있고 교사들도 나의 자모회 봉사활동에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초등부를 벗어나는 시간이 멀어 질수록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는 초등부는 낯설어지고, 바뀌는 교사들도 나에게 가산점을 줄 이유가 없었다. 부탁을 하면 난처하니까 서로 미루거나 외면하려 하고, 자모 중의 누구를 시켜서 얻어 내려고 하면 나처럼 간이 크지를 못 해서 상당히 곤란한 심부름을 시킨다고 어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선생님들과 자모님들의 넓은 아량과 배려로 작년까지 무사하게 산타의 역할을 잘 해 왔다.

 

나이가 들수록 잔잔한 구설들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매번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자신도 구차해 보이기 시작했다. 주님께서는 이런 나의 갈등들을 아셨는지? 아니면 전처럼 간 크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의 상실로 다시 수리를 해서 써야 할 일이 생기셨는지? 또 아니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서 폐차시키기로 마음 돌리셨는지? 건강 악화와 여러 가지 악재들이 겹쳐서 모든 나의 신앙의 행위들을 쉴 수밖에 없이 되었다. 그래서 쉬고 있다. 그러나 성탄이 다가 오면서 그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편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던 산타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어렵고 힘든 갈등이었다.

 

다행히 초등부 미사가 24일에 특전으로 이루어 지지 않아서 성탄 전야는 그런대로 넘어갔다. 그런데 25일 아침9시 미사에 중고등부 미사와 어린이 미사가 겹쳐버렸다. 아마 주임신부님의 병세로 인하여 보좌신부님 혼자서 성탄미사 전체를 감당해야 하는 이유로 그렇게 된 것 같다. 성당에 가서 과자를 탈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아침시간이 다 가 버렸다. 오히려 잘 된 것 같았다. 내 방식의 신앙을 접어야 한다면 확실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위안이 되기도 했다. 잊기로 했다.

 

그런데 25일 하루만이 가능한 일! 절대로 그 날을 넘겨서는 안 되는 아이 하나의 울음소리가 내 귀를 찢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려 할수록 더 그 울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반 지하방 창살 안에서 끈이지 않는 예사롭지 않은 울음소리에 발길을 돌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더니 삐적 마른 사내아이가 인절미 한 접시를 놓고 이상한 몸짓을 하며 발악에 가까운 눈물을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처량한 안타까움에 손을 창살사이로 넣으며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란 말만 계속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폐아인 그 아이를 두고 엄마가 작은 아이 유치원 입학식을 갔던 것이다. 아이가 한가지에만 몰입을 하기 때문에 집중된 힘이 세다 보니 다른 집에 맡길 수도 없고 맡아 주신다고 해도 감당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으라고 떡 한 접시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다녀 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연이 되었다. 아이를 포기하자는 남편의 강압을 어미기 때문에 감당해 낼 수 있었던 위대한 엄마는 아직도 그 자식을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 알고 보니 그 엄마도 신자였다. 성당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엄마! 나는 그 엄마의 눈물을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전에 한번 그들을 어린이 여름 신앙 학교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내가 도와주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일학교 아이들이 그 아이가 신기해서 도무지 참여 하는데 집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그 아이는 언제 어디로 튈 줄을 모르는 아이인데다 모두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 아이를 감당하기에는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우리 국가가 장애인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부족한 현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갔다. 다시는 성당에 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의 울음소리가 계속 커져 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아홉시가 다 되어 간다. 대축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아기예수님께 드린 나의 마음과 물질의 모든 봉헌이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당의 빈첸시오의 도움을 받거나, 교우가 아니거나, 그래도 넉넉한 사람들은 제외하고라도, 그 아이에게 만큼은 산타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울림이 환청이 되어 들려오고 있었다.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슈퍼로 갔다. 아이들이 좋아 할 만 한 것들을 골라 무조건 짝꿍을 맞추어 담았다. 형 때문에 항상 자기의 몫을 양보하고 자라는 동생에게도 고른 몫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계산이 끝나고 야채를 담는 투명봉투 두개에 각각으로 하나씩 모양 좋게 담았다. 성당에서 주는 선물과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마련한 선물을 들고 이사해서 작은 빌라에 살고 있는 그 집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그동안 많이 자라 있었다. 처음으로 남편을 보았다.

 

잠깐 느끼는 촉감이지만 예전 보다 부드럽게 느껴졌다. 남편과 아이문제로 다투는 일은 이제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내년에는 좀 더 일찍 올게요."라고 나는 벌써 내년 성탄을 약속하고 있었다.

처음 뵙는 남편께서 응수를 하셨다.

"저 사람 성당에도 안 다니는데 그런 건 뭐 하러 가져다주세요?"

그 대답이 얼마나 나를 기분 좋게 했는지 모른다. 성당에는 못 나가고 있지만 잘 먹을게요 라는 대답으로 들려 왔다.

 

"벌써 몇 년째 이렇게 잊지 않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쌀쌀한 밤공기를 마다하지 않고 밖에까지 따라나선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이 아름다운 성탄에도 자식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일이 많은데, 이렇게 아이도 지키고 가정도 지키고 살아준 그 엄마가 고마워서 끌어안고 말았다. "힘내요. 용기 잃지 말고 잘 사세요."라고 속삭여 주고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을 연신 해 대면서 돌아 왔다. 주님께서 꼭 해야 하는 산타라고 말 해 주시는 것 같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제 삶 안에서 희석시키지 못 하는 작은 갈등들을 다스려 주님의 뜻대로 하고 돌아왔으리라 믿으며 성 스테파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본받게 하소서. 아멘.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 ㅡ마태오10,1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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