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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이 잠시 한눈을 파신다면?/류 해욱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1 조회수661 추천수9 반대(0) 신고
하느님이 잠시 한눈을 파신다면?/류 해욱신부님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어느 날 전교생이 모인 조회시간이었다. 성서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자였던 여자 교장 선생님이 훈화 중에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징벌을 내리신다는 내용의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그분은 손으로 성서를 드시더니 어느 한 구절을 뽑아 읽으시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하느님이 아시도록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회고해보면 교장 선생님이 아주 많은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겁을 주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당시 나는 그분의 말씀에 상당히 두려움을 느꼈다. 교장 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하느님이 우리를 외면하시면 우리는 가을 낙엽처럼 말라비틀어져서 죽게 될 거라고 말이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는 실제로 말라비틀어진 커다란 낙엽 한 잎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시게 하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면, 만약 우리가 이 기도에 실패를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느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것 이외에도 아주 할 일이 많으실 텐데 잠깐이라도 한눈을 파시고 나를 쳐다보시지 않으시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는 나를 쳐다보시지 않을 텐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 거무칙칙한 낙엽처럼 말라비틀어지게 될까? 그 때 당시 나는 공포와 전율에 싸였었다. ‘하느님이 한눈을 파신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에 너무 압도되어서 나는 거의 잠을 자지도 못했다. 나의 부모님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사회주의자들이셨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에게는 이런 의문에 대해 여쭈어 볼 수도 없었다. 당시 유대교의 랍비이셨던 할아버지가 현실 세계보다 더 큰 어떤 실재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때 나는 하느님을 단지 할아버지의 친구로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우시면서 카드놀이를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도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친구인 줄로 알았다. 내가 지니게 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단지 며칠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당시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고 느꼈다. 아마 지금의 어른들은 여섯 살짜리 꼬마가 지니고 있던 두려움과 완전히 외톨이라는 느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자 나는 교장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모두 말씀드리고 내가 얼마나 무서웠었는지를 털어놓았다. 나는 몸을 떨면서 질문을 드렸다. “하느님이 한눈을 파시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마침내 그 물음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나도 모르게 그만 할아버지 어깨에 기대어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안으시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위로해 주셨다. 할아버지의 손길은 아주 부드러웠지만 좀 우울해 보였고 화가 나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곧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으시더니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런 물음을 던지셨다. “나오메레야,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나오메레’라고 부르실 때, 그냥 단순히 내 이름에 대한 애칭으로 ‘나의 귀여운 나오미야’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오메레는 작은 영혼이라는 뜻이다.) 네가 한 밤중에 네 침실에서 잠이 깨었다고 하자. 너의 아빠, 엄마가 너를 집에 혼자 버려두고 어디에 가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 수 있지?” 나는 울면서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어떻게 알지? 네가 아빠, 엄마를 바라보거나 그분들의 방에 계시는지 찾아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니?”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니?” “아니오.” “두 분을 만져 보아야 아니?” “아니오.” 어느새 나는 울음을 그치고 할아버지가 던지시는 물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그것은 그냥 아는 것인데 왜 그런 물음을 던지실까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것은 그냥 알게 된다는 나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아주 기뻐하시면서 고개를 끄떡이셨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냥 아신단다.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너를 찾아보거나 만져 볼 필요가 없지. 그분은 그냥 아셔. 같은 방식으로 너도 하느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아는 거지. 하느님이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이 방에는 우리 둘만이 아니란다.” 하느님이 이 방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은 깊은 내면 안에서 이루어진 체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고 언제나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이다. 우리가 꼭 하느님의 시선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분은 늘 그렇게 거기 계신다. 하늘과 땅이 영원히 존재하듯이 그렇게 무한한 존재로서 우리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중력과 같다. 전혀 의식하지 않지만 항상 중력은 작용하고 있다. 만약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시 그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내면으로부터 그냥 알고 있는 힘이 바로 삶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이며 늘 살펴보아야 할 우리 삶의 나침판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 힘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중력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가 의식하지 않지만 아주 큰 것처럼 그렇게 엄청나게 크고 깊다. 다른 어떤 것보다 바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 느낌이 내 삶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병들고,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할 때 내가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느낌이 주는 힘이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믿음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아주 큰 은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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