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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살한 영혼 이야기
작성자김기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1 조회수1,693 추천수2 반대(0) 신고

자살한 영혼 이야기를 쓰기 전에 자살은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먼저 쓰겠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여 실제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큰 대죄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선물하여주신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이유가 어떻든 용납될 수 없으며 대죄를 범하게 됩니다.

자살은 몸에서 영혼이 몸에서 떠나가는 시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완전한 참회를 이룩하지 못합니다. 물론 오랜 준비 속에서 자살의 범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행위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살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신비스럽기 때문이며, 언제 그의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지에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살은 일종의 살인의 형태이며 분명히 대죄가 됩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 됩니다.

이러한 자살행동이 참된 것이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지혜와 심판하심의 섭리하심에  큰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서도 자살은 큰 죄가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 자 하나도 없다.'

(신명 32,39)

 

과거 30년간의 자살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참 신앙을 그만큼 덜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공덕을 쌓으면 하늘나라에서 보다 높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교회는 고통을 즐거운 마음으로 참아나감으로써 하느님께 진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고통의 의미는 하느님의 은총을 위해서 내 스스로가 이웃 또는 남을 위해서 베푼 자선행위 및 은혜로운 일을 불평 없이 참고 견디어내는데 필요한 수고를 말하며 부채는 나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정의를 거스르게 한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가장 우울하거나 낙담 또는 고통 중에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보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고통을 제공함으로써 견디어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범한 죄의 빚을 갚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남을 위한 고통의 감수, 기도, 선행, 자선행위 또는 연옥형벌을 통하여 빚을 보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살행위는 결코 자신의 생명문제를 해결하는 정당한 대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살하는 사람은 지옥문으로 빨리 뛰어 들어가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혼이 몸에서 떠나기 전에 생전에 범한 죄를 완전히 참회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번 거듭하는 이야기이지만 자살 행위는 하느님을 가장 분노케 하는 행위임을 명심하십시오.

 

(발췌: '지옥에서의 탈출' (예수회 쇼페 신부 토마스 A. 넬슨/ 김승연 옮김,

성요셉출판사)

 

자살한 영혼이 구원된 특별한 이야기를 말하기 전에 다시한번 말하지만 자살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분노와,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구 등에게 평생  깊은 슬픔을 안겨 주게 됩니다. 자살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시한번 쓰겠습니다.

 

희생자 자신의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행위로 인해서 직접 간접적으로 결과되는 모든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살의 공통된 특징은 동기와는 상관없이 행위의 순간에 결과를 본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언제나 자살을 거부해 왔고 가톨릭 윤리신학도 모든 종류의 자살을 중대한 범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는 모든 형태의 살인은 직접적 살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완성하도록 노력해야할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즉, 자살자는 더 이상의 자기 인격 성장을 막아버리고 하느님의 요구인 자기 완성으로의 성장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살은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실망의 최종적 표지이며 생명의 주재권을 가진 하느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즉,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일, 독재자의 무력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하는 일,자식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는 일, 애국하는 마음으로 희생하는 일 등입니다. 이런 경우는 특별한 종류의 자살로 보아야 하며 일반적인 자살의 범위에 포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살에 관한 교회법

 

1917년 구 교회법은 의도적 자살자들을 십계명과 신적 절대권을 침해하는 자들로 보고 교회 장례식을 금지하였습니다.

단 이성능력이 없이 자살한 자는 이 법칙에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자살자의 지향이 불확실할 경우에는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되 평범한 예절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살자를 위해서 개인 미사는 드릴 수 있습니다. 죽기 전에 참회했다면 정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해 줘야 합니다.

 

새 교회법에서는 자살자의 장례 예식 거절 원칙이 중지되고 분명한 죄인들에게만 장례식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자살 행위의 20%는 정신 질환에서, 60%는 정신병적인 성격에서 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살 당시에 본인 스스로 자유 의지를 온전히 발휘하여 사태를 판단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살자의 주관적인 죄책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교구 주교의 사목적 판단에 맡겨 놓고 있습니다. 주교는 객관적으로 항상 단죄되어야 할 자살 행위에 대해 판단하되, 애덕을 최대한 베풀어 자살자의 인간적인 나약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법적 정신입니다.

 

(발췌:'(그리스도인을 향한) 죽음의 편지' (한영창 엮음, 성요셉출판사)

 

자살자가 구원되다

 

성 디지에르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길로메(Guillaumet) 신부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체험을 보고하였다.

1855년 그 신부는 프랑스의 아르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승객들이 요한 비안네 신부(1786~1859)의 강론, 기적, 예언, 마귀와의 싸움, 회개시킴 등에 대해 서로 나누고 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부 곁에 검은 옷을 입고 묵묵히 앉아 있는 여인이 있었다. 기차가 멈추자 그 여인은 그 신부에게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신부님을 따라 아르스로 갈 수 있을까요? 신부님이 저를 인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들은 차를 타고 아르스 성당에 도착했다. 미사가 금방 끝났는지 성당에서 신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끝으로 요한 비안네 신부님이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그 여인 앞에 오더니 귀에 대고 무엇인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당신 남편은 구원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그 여인의 태도를 보고 다시 비안네 신부님은 천천히 말했다.

 

"당신 남편은 구원되었습니다고 내가 말합니다. 지금 연옥에 있으니 당신은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강물 위 다리 난간에서 강물로 뛰어들때 통회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5월 성모성월에 당신 방에서 기도하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마음에 별 믿음이 없었지만 그는 때때로 당신과 함께 기도했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마지막 통회와 자비심을 얻게 한 것입니다.'

 

옆에 서 있던 그 신부는 비안네 신부님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하느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환시를 비안네 신부님에게 주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 여인이 떠나기 전 그 신부를 찾아와 자신을 인도하여 준 데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 여인의 얼굴은 평화스러웠고 기쁨에 찬 모습이었다. 그 신부에게 감사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신부님, 의사 선생님이 나의 건강회복을 위해 여행하라고 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무서울 만큼 큰 실망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남편의 자살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너무나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남편은 무신론자였습니다. 나는 그가 믿음으로 하느님께로 돌아오기를 희망했지만 갑자기 자살해버렸으므로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버림받았구나. 영원히 다시는 못보겠구나"하고 생각하니 너무나 괴로왔습니다. 그런데 어저께 신부님도 비안네 신부님의 이야기를 다 들으셨지요? 통회하였으니 구원되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병은 다 나았습니다.

처음 그가 구원되었다는 말을 했을때 비안네 신부님은 내 남편이 누구며 언제 자살했는지 또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놀랍기만 합니다."

 

그 신부는 비로서 5월 성모성월과 성모신심이 얼마나 큰 성과를 얻는가를 깨달았다.

 

"지극히 인자하신 동정 마리아여, 생각하소서. 어머니 슬하에 달려들어 도움을 애원하고 전구를 청하고도 버림받았다 함을 일찌기 듣지 못하였나이다..."

 

하는 성모께 드리는 호소가 한 번도 안들어주는 일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발췌: '마리아(maria) 통권 51호, 독일 뮌헨의 카알 마리아 하러(Karl Maria Harrer) 신부)

 

성모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은총을 받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의 간청은 하느님의 분노도 수그러지게 하십니다. 또한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성모 성월(5월)'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성모님을 상경하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고, 교만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살하면 그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는지, 아니면 특별한 은총으로 연옥으로 가는지 하느님만 아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있었다면 연옥의 희망은 있습니다. 자살은 부모, 형제,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큰 슬픔을 안겨줍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시련이라도 보속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미사참례,기도, 선행, 통회,자선을 배풀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살한 사람을 위해서는 미사봉헌, 묵주기도(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기도...등을 열심히 정성껏 바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공중에 날아 올라가지 못하는 병아리와 같다.

기도하는 사람은 태양 가까이 높이 날아 올라가는 독수리와 같다."

(아르스 신부)

 

"여러분이 아주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생활을 갈망한다면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예수님의 어머니시요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여러분 자신을 연결하여 이어 주십시오."

(비진스키 추기경)

 

바다의 별

 

바다의 별이요,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평생 동정이시며, 하늘의 문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죄인의 사슬 풀고, 눈먼 이에게 빛 주시며

악을 멀리 쫓고,선을 구해주소서.

기묘하신 동정녀요, 가장 양선하신 이여,

저희를 죄에서 구해

착하고 조찰케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그리스도께 영광과

삼위이신 성령께 같은 존경 있어지이다.

 

지옥탐험 32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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