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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은 혼돈 중에 있는 세상에 납시어 질서를 잡으셨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1 조회수460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이 장엄한 성령강림 대축일에는 전야예식이 있으며 모든 종류의 독서를 할 수 있는 특별한 전례를 거행하는 날이다.   이 날은 성령이 인간가족에 머무르고, 인간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시어 만들어지게 된, 교회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은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기념하지만 교회의 탄생에 대해서는 시무룩한 편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교회의 이면사(裏面史) 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또 성령이 살을 취하시어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탄생하셨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가톨릭 교회가 토박이 사회에서는 줄어들고 있지만 여러 목소리를 내는 이민자들 사회에는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고요 속에 태어나셨지만 교회는 소란 속에서 태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현자들도 모르게 태어나셨다. 예수님은 인간 성장의 자연법칙에 따라 성장하셨지만 교회는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성령의 덕분으로 태어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교회가 지혜의 성령(The Spirit of Wisdom)덕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믿음과 행동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나를 반성하면서 이 날을 맞이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물론  예수님도,  하느님의 손에서 인간가족의 손으로 넘겨졌다. 이제 모든 것은 인간가족의 책임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성령의 은총의 경험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살아계신 활동적인 몸의 지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축일을 기념해야 한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의 첫 번째 독서와 복음에서는 아주 중요한 뜻을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수확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많은 유다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비옥한 땅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였던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곡식을 나누어 가졌다.
 
 사도행전(2:1-11)을 보면 하느님께서 새로운 곡식을 주시고, 온 땅을 축복의 장소로 만드신 것으로 되어 있다. 성령을 받게 됨에 따라 그들에게는 더 이상 고민이 없어졌다. 그들 사이에 내적인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주님께서 여러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성령과 그 내적인 불을 경험하고 돌아가도록 초대하신 꼴이 되었다.
 
 유다인 신자들에게 성령강림 대축일은 수확기념일이었지만, 그리스도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경작자들을 수확하기 위하여 성령을 심으신 것을 기념한다. 우리들이 성령강림 대축일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세상에는 초대교회가 만들어지기 전에 겪었던 것과 같은 혼란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20:19-23)에서는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성령을 보내주시지만 같은 내용이다. 사회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대신에 훨씬 더 중요한, 제자들의 파견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제2독서(1코린(12:3-7. 12-13))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하나뿐인 성령은 모든 사람의 모든 일에 역사하시면서 놀라운 은총을 보이심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에화를 만나보시려고 했지만, 그들은 분수를 모르고 하느님과 같이 되기를 바란 결과,  죄를 범하여 하느님을 뵐 면목이 없었기 때문에 숨어 버렸다.   예수님게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주님을 뵐 면목이 없었기 때문에 숨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평화의 인사'를  두 번이나 하시고 난 후에 그들에게 두 가지 놀라운 일을 하셨다.  당신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사명을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하시고 난 다음,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어 <창세기>에서 본 바와 같이, 혼돈 중에 질서를 가져다 주시는 성령을 그들에게 주셨다. 예수님께서 모든 생명에 질서를 유지시키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당신께서 성령을 육화시켜 당신의 판박이로 만드신 제자들로 하여금 서슬이 퍼런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대립으로 빚어진 혼란스런 세상의 질서를 잡으라고 이르셨던 것이다. 당신이 혼란 중에 있던 세상의 질서를 잡으셨듯이, 위축되고 가치관이 혼란해 있던 제자들의 생각을 먼저 바로 정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이 있는 골방에 들어가시니 그들은 모두 혼돈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빛, 진리 그리고 생명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나무라시지도 않고 죄를 묻지도 않으시고, 그들 삶에 축복을 내리셨다는 것과 성령이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하여 숨쉬도록 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키셨다.
 
<창세기>에서 창조의 하느님께서는 질서의 영에 숨을 불어넣어 주시며 "빛이 있으라", "생명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육화되신 예수님께서도 창조주 하느님과 꼭 같이 우리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꼭 같은 성령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시며 일으켜 세우시어 빛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등을 두드려주시면서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시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초대 교회의 등을 두드려주셨을뿐만 아니라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꼭 같은 성령이 오늘날의 우리의 교회와 우리들에게 역사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 걱정할 일도 없으며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는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라"는 말씀 외에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으셨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당연히 혼돈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가기를 원치 않는 곳이 어디인가? 어디에 빛과 생명을 주어야 하는가? 우리 가족, 공동체, 문화의 어디에 어둠이 있고 죽음이 있는가? 바로 그곳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오늘은 평온을 기념하는 축제가 아니다. 오늘은 보다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는 날이다. 성령은 담요 같이 따뜻하고 막역한 위로자가 아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한다. "내가 했던 것처럼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말고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살아라."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4).
(미국 크레이튼 대학 래리 질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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