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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3일 야곱의 우물- 마태 13, 1-9 묵상/ 말씀이 자라는 밭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3 조회수533 추천수3 반대(0) 신고
말씀이 자라는 밭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3,1-­9)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늘 읽고 들어서 입에 붙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삼천리금수강산이고, 비옥한 땅에 계절은 뚜렷해서 천하에 이처럼 작물이 풍요로운 곳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유럽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흰 눈 속에서도 풀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천길 암벽에서 옥빛 호수로 이어지는 유장한 기슭은 아름다운 거목들의 바다였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 강산의 깊이와 다감함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유럽에 처음 내렸을 때 어쩔 수 없던 그 배신감은 아직도 기억에서 생생합니다.

 그 배신감이 야속한 마음이 들 정도로 커진 것은 그네들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서였습니다. 저희 성씨 집성촌이 있는 상주에서 한 뼘 밭을 일구려고 온 가족이 허리가 빠지게 돌을 골라내고 다듬으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아 온 제게, 봄밀을 파종해 놓고는 잡풀 한 번 뽑지 않고 추수하는 농사는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민들레 언덕에는 지난 철에 거둔 유채에서 씨가 날아와 지천으로 자랍니다. 가을에는 억수로 자란 풀을 퇴비와 사료용으로 쓱 걷어내고, 그 자리에 가을밀이나 보리를 뿌립니다. 저녁 산책 때 우유를 사러 농가에 갔다가 왜 그렇게 모든 게 잘 자라는지 물었더니 중북부 유럽의 검은 땅이 워낙 비옥하고, 비가 연중 골고루 내려서 그렇다는군요. 얼마나 부러웠는지요.

재작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가까운 사람이 마흔이 다 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일이 무척 고된데도 열심히 예비자 교리를 다닌 이 애송이 신자는 세례를 받자마자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요일별로 성경 공부, 기도회, 성체조배를 하는 대단한 열성을 보이더니 이제는 기도와 행동으로 제 스승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처럼, 그 사람이 바로 말씀을 받아들여 백 배로 키우는 상토(上土)였던 것이지요.

 그를 통해 다시 깨달았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논리가 아니라 의지가 바로 말씀이 자라는 밭이라는 것을.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만,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면서 돌이켜 보니 저 같은 고집불통에게 주어진 말씀은 말하자면 제 고향 상주의 계단밭에 떨어진 씨앗이겠군요. 꼭 가슴에 새겨 들여다보고 반성하겠습니다. 밭이 나쁘면 씨가 고생한다는 것 말입니다.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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