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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6일 야곱의 우물- 마태 13, 24-30 묵상/ 확신과 의심 사이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7-26 조회수514 추천수7 반대(0) 신고
확신과 의심 사이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마태 13,24-­30)
 
 
 
 
◆나이 든 누나가 가꾸는 삼백 평 남짓한 밭은 얼핏 보면 작은 낙원입니다. 고추와 고구마 이랑 곁에 토마토가 열리고, 밭모퉁이에 심은 도라지에는 꽃이 애틋하게 열립니다. 자두와 살구나무에 달리는 꽃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봉숭아가 흐드러집니다. 누나가 욕심이라고는 없는 얼굴로 유유자적 호미를 들고 이랑 사이를 걷습니다. 지난해 언젠가 그 모습을 보고 “아, 참 좋다, 누나. 신선놀음이네.” 했더니, 누나가 혀를 찼습니다.
 
이 손바닥만한 밭에 원수 같은 게 한 가지 있다며 말입니다. 자고 나면 이랑이고 언덕이고 가리지 않고 지천으로 올라오는 풀들과의 전쟁이라는 겁니다. 그냥 두자니 작물이 안 되고, 뽑자니 땡볕에 허리가 꼬부라질 지경이어서 그렇다는군요. 제초제를 치면 좀 수월하겠지만 명색이 친환경 농사인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주인이 잘 돌보지 않는다는 근처 밭을 보니 작물은 안 보이고 한 키는 되는 풀숲이더군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하느님 보시기에는 잡초도 소중한 생명이겠지만, 그 생명력을 좀 과하게 주신 건 아닌가요?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이 제일 미워하는 게 자고 나면 뒤덮이는 잡초라고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 말씀은 준엄하기 짝이 없습니다.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 씨를 뿌립니다. 좋은 작물에 섞여 자라는 가라지는 차라리 미리 뽑지 않는 게 좋다고도 하십니다. 나중에 단으로 묶여 태워지는 것이 가라지의 운명이라고요. 적당히 가려서 어디 빈 땅에라도 던져놓는 게 아니라 태워버릴 예정이시랍니다. 어차피 뽑아도 사라질 것도 아니고, 괜히 손을 대다가는 멀쩡한 줄기들까지 상하게 될 테니 우선 그냥 두자고도 하십니다.
 
복음을 읽으면서 저는 오금이 저립니다. 좋은 작물과 가라지, 어느 쪽에 속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렇습니다. 미리 야단이라도 치시면 늦기 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을 텐데, 그 정신 차리는 것이 온전히 제 몫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세상에서 보이신 모범을 거울 삼으면 깨닫지 못할 일도 아니련만, 무덤에 한 다리 걸치고 살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뜨거운 확신과 칠흑 같은 의심 사이를 오갑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그래서 오늘 제가 할 일은 기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같은 기도로 성가시게 해드려 죄송하고 부끄럽지만, 이 어중간한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습관이 된 악행을 끊을 용기를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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