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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24일 야곱의 우물- 마태 16, 13-2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24 조회수611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마태 16,13-­20)
 
 
 
 
일찍이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적을 전해 듣고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묻습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11,4ㄴ-5)
 
복음서 한복판에서 마태오는 예수님이 직접 당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유일한 장면을 보고합니다. 그동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따로 의견을 물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산상설교를 하신 뒤라거나 다른 어떤 활동을 하신 뒤에라도 그들의 견해를 묻거나 떠볼 수도 있으련만,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신 일로 군중은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시길래 저토록 큰 능력을 지니셨을까를 두고 둘 이상만 모이면 수군거렸을 법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성 문제는 공생활 첫 시기의 활동을 요약하고 마무리짓습니다. 이 장면은 둘로 갈라집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13-­16절) 베드로에게 주어진 권한(17-­19절)입니다.

 
어쩌다가 요르단 강 상류에 위치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까지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계 시리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등 여러 정황이 마태오 공동체가 처한 환경과 비슷한 곳이라고들 합니다. 이곳은 헤로데 대왕의 아들 필립보가 많은 경비를 들여 재건한 도시입니다. 한편 여기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13절) 사람들 역시 예수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예수님을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유일성은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다시 올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볼 뿐입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 예언자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14절) 세례자 요한은 금욕주의자였고, 엘리야 예언자 역시 매우 엄격하게 자신의 순수한 믿음을 지켰으며, 예레미야 예언자는 수난받는 의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예언자들이 왔다 갔습니다. 앞으로 계속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그렇고 그런 여러 예언자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 분일까요? 이번에는 제자들 차례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첫 질문에는 제자들 모두가 대답했으나 두 번째 물으실 때는 시몬 베드로만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 예수님이 원하신 대답이었습니다. 군중과는 달리 베드로는, 인간을 위하시고 하느님과 유일한 관계를 맺고 계신 예수님의 전적이며 고유한 특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백성과 온 인류에게 생명과 충만함을 선사하실 분, 생명 자체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과 가장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제자들의 대변인이라기보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앙의 본보기로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답변은 최고의 칭찬을 받습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17ㄴ절) 베드로는 어떻게 이토록 정확하게 예수님의 신원을 간파할 수 있었을까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17ㄷ절)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를 수 없는 인식을 하느님께서 일러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베드로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셨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주듯 말입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새로운 소명도 맡기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8절) 그의 새로운 이름은 그의 소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건축에 비교해 말씀하십니다. 새로 도시를 재건하느라 온통 공사판이었을 카이사리아 도시에 어울리는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건물을 세우시고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하는 이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죽음의 힘에도 눌리지 않는 영원한 공동체를 약속하십니다.
 
일찍이 하느님께 새 이름을 받은 아브라함도 이스라엘을 있게 한 반석이었습니다. “내 말을 들어라, 의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아 주님을 찾는 이들아. 너희가 떨어져 나온 반석을 우러러보고 너희가 퍼내 올려진 저수 동굴을 쳐다보아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우러러보아라. 내가 그를 부를 때 그는 혼자였으나 나는 그에게 복을 내려 그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였다.”(이사 51,1-­2)
 
그 건물의 토대는 참된 고백을 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문지기가 아닙니다. 집주인을 대신해 전권을 위임받은 관리자입니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9절) 베드로에게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이끄는 열쇠가 주어졌습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은 생명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매고 풀어야 할 권한은 판결하는 일입니다.
 
 
무엇이 허락되고 금지되는지, 무엇을 공동체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에서 제외시킬지를 가립니다. 요한복음(20,23)에서는 용서의 권한과 연결시킵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제멋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공동체를 관리할 지도자를 주십니다. 베드로는 최고의 칭찬과 더불어 가장 무거운 책임을 떠맡았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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