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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로움의 의미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1 조회수574 추천수1 반대(0) 신고
 영어 성경에서 “Justified”나 “Justification”은 “Righteousness”로 해석되는 수가 많다.
이는 “하느님의 눈으로 봐서 하느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옳은 행동”을 뜻한다.
우리들은 죄 때문에 하느님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우리들은 우리들의 죄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이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먼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바로 세우시고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믿음(faith)”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justified)”고 말하였다. 이 말은 종교개혁의 핵심 논쟁거리가 되었다. 마틴 루터 박사는 한번만 믿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였다. “믿음”이란 단어를 바르게 해석하고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죄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정신적으로 온전히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였다.
 
또 의로움(Justification)은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만들어지는(extrinsic)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들의 죄가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타락해 있고 죄가 많고 악행을 많이 저지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믿는 “믿음”(internal assent)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가리어지고 있다. 즉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를 보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보시기 때문에 우리를 마냥 의롭게 보신다는 뜻이다. 가톨릭에서의 믿음은 아주 역동적인 개념이다.
 
 구약에서 믿음에 해당하는 단어는 “Amen”과 어원이 같다. 즉 변함 없는 충성을 뜻하며, 정신적으로 믿음과 동시에 그렇게 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믿음에는 실제로 행동이나 일이 포함되어 있다. 즉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 가톨릭에서는 정신적인 “의로움”도 믿지만 우리들이 죄인이 되기 전에 비하여 세례를 받고 난 뒤에 내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정화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의로움(Righteousness)을 희랍어 Diakaiosyne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올바르고, 거룩하며, 유덕하고, 고결한 상태로 하느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행하고, 죄를 피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은 사람이 만든 종교적인 법이다. 바오로 사도는 “어느 누구도 고결할 수 없으며 고결한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다”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율법이 지시하는 법을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는 유대교를 비난하였다.
 
성경(마태 5: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서 말하는 “깨끗한 마음”이란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율법적인 개념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진 기준이 아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본래부터 사심이 없고 자기 뜻이 없는 마음이며 깨끗한 눈과 깨끗한 마음 앞에 하느님이 늘 계신다.
 
인간은 제 뜻과 사심(私心)으로 순수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린 불결하고 더러운 존재이다. 마귀는 제 뜻을 이루려고 하느님에게 반역했다. 마귀의 꾀임에 빠져 허욕과 사욕을 마음에 담고 불순종한 자가 아담이다. 그의 후손인 인류 역시 이 마음을 가지고 제 뜻을 이루기 위해 제 길을 걸어가는 불순종의 사람들이다. 아담으로부터 타락하여 영생을 알지 못하는 죽은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이 죽은 마음이 어떻게 하면 깨끗해 질 수 있을 까? 사도 요한도 거룩함과 깨끗함은 행위로서나 율법과 계명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1요한 3,2-3). 당시 행위를 요구하는 율법의 기준에서 의롭고 깨끗하다고 하는 유대 사회의 사람들을 향하여 참 깨끗함이 무엇인가를 알려 줄 필요가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율법에 의해 의로워진 의(義)를 부정해 버리지 않으면 참 의로움을 알 수가 없다. 율법의 의(義)는 행위적이요 행위를 하게 하는 마음은 여전히 죽은 심령이며 하느님을 알 수 없는 마음으로부터의 행위이다. 사심과 제 뜻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행위적으로 율법을 다 지켜도 하느님은 그것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신다.
 
행동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이 거룩하지 아니하면 행동이 의로운 것 같이 보여도 의로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옳은 일에 몸을 던져야 의로움 사람이 된다. 하느님의 법을 순종하고 남을 살리고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것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길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계명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여(계명 위주로 고해성사를 봄) 의롭게 사는 방법을 잘 모른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거룩한 생활 즉 의로운 생활을 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①이 세대를 본받지 마라.
 세상의 가치관과 방법을 배우지 말라는 뜻이다.
②마음을 새롭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날마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아울러 죄악을 빨리 정리하라는 말이다.
③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살아라.
 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구별하고, 말해야 할 것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고, 서야 할 곳과 서지 말아야 할 곳을 분별하고 살라는 것이다.
 
 성 요한 칸시오( St. John of Kanty, 1390-1473)는 말했다.
친구와 이웃이 정의와 진리를 요구할 때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가? 재치 있게 참을성을 갖고 친절하게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모든 불의(不義)에 맞서서 싸워라. 그러나 서툴게 하면 여러분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착한 동기에 먹칠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는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1요한 3:2-3).”
(200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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