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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2 조회수1,018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No one who lights a lamp conceals it with a vessel
or sets it under a bed;
rather, he places it on a lampstand
so that those who enter may see the light.
(Lk.8.16)
 
 
제1독서 잠언 3,27-34
복음 루카 8,16-18
 
 
얼마 전에 교구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좌신부 때 알고 지냈던 청년 한 명을 만나게 되었지요. 정말로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반가워하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부님, 어쩌면 옛날과 똑같아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신부님이 이제는 꽤 늙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청년과 거의 10년 만에 만난 것인데, 따라서 분명히 저의 모습도 변했을 텐데 이렇게 말해주니 정말로 기분이 좋더군요.

이렇게 기분 좋은 마음을 갖고서 자가용이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또 다른 신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신자 역시 예전에 보좌신부 때 뵈었던 분이었지요. 그런데 그분께서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본당 사목이 무척 힘드신가봐요. 왜 이렇게 얼굴이 안되셨어요? 그때보다 팍 늙으신 것 같아요.”

방금 전까지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그 기분이 싹 가셨습니다. 누구는 젊어졌다고 하고, 또 누구는 늙어졌다고 하고……. 혹시 교구청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팍 늙은 것일까요?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요. 이유가 있다면 보는 사람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똑같은 사람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볼 수 있는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그 원칙을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그렇지요. 등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불을 켜서 등경 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등불을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만이 최고의 것인 양 주장을 굽히지 않지요. 이 순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제대로 보게 해주는 내 마음의 등불이 나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상징되는 그릇과 침상 밑으로 인해 가려지거나 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내 마음의 등불이 등경 위에 잘 놓여 져야 합니다. 여기서 등경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주님 위에 놓여 져야 겸손해질 수 있으며, 주님과 함께 해야 우리들은 제대로 세상을 밝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등불이 제대로 켜져 있는 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과 함께 하는 이들만이 자기 마음의 등불로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습니다.



기왕 하는 말 상대방이 좋아하는 말을 합시다.




가방을 풀어 놓아라(플립 플리펜, ‘위대한 반전’ 중에서)

돌이켜 보면 한마디 말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열두 살 때 일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우리 목장의 잡초 깎는 일을 하고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전날 밤에 투수로 출전했던 리틀 야구 경기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경기에 대해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경기 도중 실수한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내가 삼진 아웃을 시킬 수 있었는데 놓쳤던 이야기를 할 때 할아버지가 불쑥 말을 가로막았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네, 할아버지. 어넷밤 야구 경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실수한 일에 대해서요.”

나는 대답했다.

“얘야,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니?”

할아버지는 또다시 물었다. 그러면서 갈퀴에 몸을 기대며 내가 평생 잊지 못할 한 마디 말을 했다.

“네 가방을 풀어 놓아라.”

할아버지는 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와서 야구공과 글러브 그리고 야구 방망이를 그대로 가방에 처박아 놓은 것은 너의 실패한 경험도 같이 처박아 두는 셈이야. 가방을 풀어 놓아야 다음 경기에 대비할 수 있지. 너는 오늘 하루 종일 뒤를 돌아보며 어제 잘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뒤쪽에 있는 유일한 것은 너의 등밖에 없단다. 나도 예전에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 내일에 집중해야지. 지난 경기를 통해 배운 교훈을 잊지 말고 다음에 써먹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셨지만 한 번 말을 할 때면 그 안에 항상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어제의 일로부터 교훈을 얻기 원하지만 “만약에 그랬더라면...”하는 아쉬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할아버지의 교훈은 간단했다.

‘뒤를 돌아보면 잘 달릴 수 없다.’
 
 
James Galway - Thorn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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