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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 홀로 영광받기와 삼손 그리고 나- 판관기68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2 조회수538 추천수1 반대(0) 신고

나 홀로 영광받기와 삼손 그리고 나- 판관기68

  <생명의 말씀>
 삼손이 레히에 이르자 불레셋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오는데 야훼의 영이 그를 덮쳤다. 그러자 그의 팔을 동여맸던 밧줄은 불에 탄 삼오라기처럼 툭툭 끊어져 나갔다. 마침 거기에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당나귀의 턱뼈가 하나 있었다. 삼손은 그것을 집어 들고 휘둘러서 천 명이나 죽이고는 외쳤다. "당나귀 턱뼈로 이자들을 모조리 묵사발을 만들었네. 나는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이나 쳐죽였네." 이렇게 외치고 나서 삼손은 그 턱뼈를 내던졌다. 그 곳을 라맛레히라 부르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판관기 15:14-17)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3,00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결박당한 삼손을 넘겨 받은 블레셋 사람들은 한꺼번에 달려 들어서 삼손을 죽이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에 와서 삼손을 죽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때 하느님께서 삼손에게 힘을 주셔서 삼손이 무기 같지도 않은 당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쳐죽였다는 게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괴력을 가진 한 사나이가 적의 1개 대대 또는 연대와 맞서서 총알 한 방도 안맞고 기가 막히게 운도 좋게 싸워서 다 이기는 80년대 람보 영화의 한 장면이라 생각하고 재미있게 읽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이상한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삼손과 같은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능을 아예 거두어 가시지 않고 다시 힘을 허락하시는가?'라는 점입니다. 삼손이 수없이 잘못을 저질렀고 지속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권능을 삼손에게서 거두어 가시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달란트를 쉽게 거두어 가시지 않고 그 사람에게 맡겨 두고 책임 있게 그 사람이 관리하고 선용(善用)하기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고, 설사 그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능력을 거두어 감으로써 단죄하기보다는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능력과 달란트로 하느님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삶을 사느냐는 절대적으로 그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도 갑자기 얻게 된 위대한 능력을 자기자신을 그러니까 자기 욕망만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큰 능력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다른 이들을 돕는 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하는 주인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피터 파커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자가 그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려 할 때 그 내면이 추악하게 망가져 버린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닫고 자기 욕망과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비우고 버리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판관기를 통해서 보고 있는 삼손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다.

 둘째는 블레셋 사람 천 명과 싸우는 삼손의 방식과 천 명을 모두 무찌르고 나서의 삼손이 보여준 태도가 매우 이상하다는 점입니다. 삼손은 혼자서 그 싸움을 시작했고 혼자서 천 명을 다 때려 죽이고는 그 싸움을 거기서 끝내버립니다. 삼손 이전의 판관들은 모두 하느님의 뜻과 능력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그 단합된 힘을 하나로 모아서 싸웠고 승리를 이끌어 낸 다음에 공동체 전체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는데 삼손에게서는 전혀 그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굳이 모으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그랬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삼손의 가장 큰 문제는 '자아(自我=self)', '자기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철저하게 자기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인데 그 문제는 전투를 끝내고 삼손이 외친 말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당나귀 턱뼈로 이자들을 모조리 묵사발을 만들었네. 나는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이나 쳐죽였네." 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든 영광의 주인이 '나=삼손'임을 과시합니다. 이전의 판관들은 거의 대부분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끌고 나서도 하느님께서 큰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선포하고 그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며 백성들의 나태한 신앙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삼손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삼손은 자신이 그 일을 했다며 자아도취의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능력은 있는데 자기 자신을 버리고 비워낼 수가 없는 사람은 언제나 결국 자기 영광만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은 자기 능력에 딸려 있는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을 텐데도 그 사명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자기 혼자 이루어서 자기 홀로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생각이 삼손을 늘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인정받고 영광받겠다는 생각... 삼손만의 생각은 결코 아닙니다.

 이 생각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늘 주입하는 생각이고 그 결과로 우리의 무의식에는 '나만의 영광'을 추구하겠다는 뿌리 깊은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걸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9:23)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볼 판관기에는 자기만의 큰 영광의 위업을 이룬 삼손이 하느님께 외치는 기도가 나옵니다. 이런 영적 상태를 가지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과연 어떤 내용인지 잘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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