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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 집착이나 애착에서 벗어나는 훈련.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30 조회수804 추천수5 반대(0) 신고
 

7) 집착이나 애착에서 벗어나는 훈련.

(탈착 훈련.)


우리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아담과 하와가 집착했던 세계,

곧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탐스러우며 하느님처럼 눈이 밝아질

것 같은‘세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쫓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1요한 2,16)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먹음직스런’ 것에 대한 집착은 곧

‘육신의 쾌락’에 대한 집착이요, ‘탐스러움’에 대한 집착은

‘눈의 쾌락’에 대한 집착이요. ‘눈을 밝게 해줄 것 같은’ 것에

대한 집착은 ‘교만’에 대한 집착을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가 이 세 가지 집착(육신의 쾌락, 눈의 쾌락, 교만)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 세계를 스스로 깨버린 것처럼 우리도

쉽게 그렇게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욕망의 고리를 풀고 제멋대로 놀아나면서

무질서한 애착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의 생명을 깨버리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구나 두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난다.

하지만 죽을 때는 모두가 두 손을 펴고 죽는다. 인간이 집착할

수 있는 것은 영혼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어떤 이는 ‘집착은 자신에 대한 가장 잔인한 행위‘라고 했다.

우리가 애착하는 만큼 구차한 목숨의 노예가 되어 짧고 귀한 생을

무질서한 욕망으로 탕진할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다름 아닌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간은 그가 집착하는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죽은 다음에 그가 평소에 익힌 행위의 미묘한 인상을 마음에

지닌 채 다음 세상으로 넘어 간다.


우리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집착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집착을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통해서 이루어질 결과에 집착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애착을 버리는 훈련이라 해서 우리가 애정을 갖고 대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질서한 애착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집착이나 애착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관심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어야 우리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관심은 우리에게 소망을 일으켜주면서 그 소망을 이루려는 마음이 작용하고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추진력을 발휘하게 되고, 힘들여 세운 뜻을 이루려고

가진 노력을 기우리게 됩니다.


관심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관심을 일으키는 마음의 움직임도 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어찌 보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자극하여 일으키는 것이 바로

관심인 것입니다. 결국 성령의 도우심으로 활활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이 내

안에서 치솟아 올라 관심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향의 순수성‘이라는 관심의 표현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까지만

미치면 되는 것이지 그 결과에 대한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그 성과에 애착을 갖지 말자고

하는 것이 오늘의 묵상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집착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집착을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소망하는 바를 통해서 이루어질 결과에 집착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애착을 버리는 훈련이라 해서 우리가 애정을 갖고 대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질서한 애착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어느 자매님이 어린 시절에 저 세상으로 간 동생을 한 번도 생각지 않았으나

이번 터기-그리스 성지 순례 중에 잊혔던 동생이 꿈에 생생히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자매님은 ‘연옥 영혼’에 대한 계시처럼 느껴지면서

그 동생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셨다는 말을 들려주셨습니다.


‘연옥 영혼’에 대한 관심도 우리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연옥 영혼’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오로의 해’를 맞이하여 바오로 서간을 읽으면서 바오로 사도를

믿음의 증거자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순례의 여정을 걷기도 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었습니다. 그도 꿈에 예수님의

현시(顯示)로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바꿨으며 이방인의 선교사로

변신하여 오늘 날 제 2의 그리스도로 알려진 분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묵상은 관심이라는 집착과 애착을 갖되 그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열심히 하는 단지 ‘지향의 순수성’을 갖고 살자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내가 관심을 갖고 행한 모든 것에 대한 결과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그 결과에 대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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