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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과 매일 복음 묵상 -'화해'는 없고 '싸움'만 있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3 조회수697 추천수13 반대(0) 신고

 

 

 

                 대림 1 주간 목요일 - ‘화해’는 없고 ‘싸움’만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라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지만,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아서 어려움이 밀려오면 어렵사리 지어놓은 집들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 말씀을 실천하고 싶지 않은 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하고 싶어도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평온하고 싶어도 자주 넘어지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죄를 짓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를 지어 인류 전체가 행복을 잃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가 씻겨 결국엔 다시 그리스도와의 혼인으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짓는 죄들을 반복해서 짓습니다. 몇 년 동안을 계속 같은 죄만을 고백하고 매번 다음부터는 짓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지만 또 똑같은 죄를 짓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행복해지고 마음의 평화가 온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말씀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쓴 일기를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서 그들은 서로 싸운다. 나는 이 싸움을 지켜보는 심판관처럼 서 있다. 그러면 서로 싸우는 이들은 누구인가? 천사와 악마? 아니다. 이들은 내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들이다. 이 싸움이 언제나 끝날까? 그 때까지 내 안에 평화는 없는 것인가?”

사춘기 때 이런 내적 분열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과 육의 싸움이 가장 치열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육체가 영을 이기는 때가 더 많아서 영적으로 많이 위축 되어있는 때였기 때문에 이런 갈등을 일기로 썼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던 때입니다.

 

이 싸움은 청년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에서 교의와 영성상담 등을 공부하신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며 이것을 상담하였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있는 내 자신들을 서로 화해시켜야 해요. 서로 화해하지 않으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참 좋은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마치 남북통일을 해서 평화를 얻는 것과 같은 ‘내 자신들의 화해’, 그럼으로써 오는 평화. 그러나 어느 순간 ‘화해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싸우는 것들은 영원히 서로 화해될 수 없는 정반대되는 세력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과, 욕망대로 살아야 한다는 육체와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가 영원히 손잡을 수 없는 것처럼 둘은 서로 화해 될 수 없는 원수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육체는 원죄가 우리의 육체를 오염시켜서 죄로만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로마 8,6)

결국 육체를 완전히 죽이지 않는 이상 생명과 평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화해란 좋은 말이긴 하지만 내 안에 있는 악한 경향을 받아들이겠다는 위험한 말도 됩니다. 화해가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평화가 옵니다. 전 그 때부터 육체적 욕망을 죽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흔들리지 않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육체적 욕망을 죽이는 작업을 말씀 묵상과 성체조배를 통해 합니다. 말씀과 성체는 제 영을 더욱 튼튼히 해서 육체가 꼼짝 못하게 잡아놓습니다. 마치 좁은 공간에 묶여있는 망아지처럼 꼼짝을 못하게 만드니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옵니다.

반석 위에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기 위해서 결국 주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 자신이 왜 아버지 뜻을 실천하기 위해 40일간 단식하며 자신의 육신과 싸웠었는지부터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와 감정에 휘둘리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고 해도 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육체와 교만부터 이기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의 영과 육이 서로 싸우며 흔들리고 있는 모래사장은 아닌지 성찰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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