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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7일 야곱의 우물- 마르 7, 1-8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07 조회수638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놓으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마르 1,1-­8)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절) 복음서 전체를 요약하는 제목입니다. 이 복음의 주인공은 세례자 요한도 마르코복음서의 저자도 아닙니다. 오로지 집중해야 할 분은 ‘그리스도’, 기름부음받으신 분(메시아)이십니다. 마르코는 책 전체를 ‘복음’이라 부릅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가져오신 소식으로서,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관한 기쁜 소식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자인 동시에 선포의 대상이며, 복음의 전달자이시면서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가 곧 복음의 중심입니다. 시작부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전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복음의 시작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놓으리라”(2절). ‘사자’가 하는 일은 임금보다 앞서 나가 임금이 가실 길을 마련하고 곧 임금이 도착하심을 알리는 일입니다. 주님의 사자에 관한 이러한 묘사는 사자가 알릴 분이 얼마나 고귀한 품성을 지니셨는지를 보여줍니다.
2­3절에 언급된 말라키와 이사야 예언자의 예고는 결국 같은 말입니다. 말라키의 예언이 이사야의 예언에 속합니다. 서로 다르게 표현한 동일한 선언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3절; 이사 40,3). ‘주님’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칭호이지만 한편 넓고 곧게 뻗은 길을 통해 당신 백성에게 오실 분을 가리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로 그분을 위해 길을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온 그는 그리스도의 선구자입니다.

 
‘광야’는 예리코에서 멀지 않은, 사해로 들어가는 요르단 강의 어귀 어느 곳일 것입니다. 이곳 광야는 회개하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떠나와야 할 그런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들 사이의 혼잡과 소란을 벗어나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하느님이 가까이 계신 곳(1,`13)입니다. 비뚤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곧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실 길의 장애물을 말끔히 치워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4절) 구원의 때는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요한의 설교도 복음에 속합니다. 그가 전하는 용서와 회개는 예수님이 전하실 복음의 머리말과 같습니다. 요한은 흩어져 있는 사람들 마음을 모아 장차 들려올 하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도왔습니다. 그가 마련하고 곧게 낸 길이 요구하는 것은 회개와 용서의 세례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에 대한 첫 응답입니다. 회개 없는 세례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죄의 용서’도 구원과 평화의 하느님과 맺는 교제의 시작입니다.

 
요한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5절)간 것은 희망적 징조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입을 통하여 하느님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이 될 사람을 모아들이십니다. 그들은 제 발로 찾아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의 심판대에 놓이기를 청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단지 준비에 지나지 않지만 죄를 용서받고 구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요르단 강 물속으로 내려가 세례를 받고 다시 올라옴으로써 죄로 더러워진 옛사람을 벗고 이제 새사람으로 새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요한의 생활 방식과 행색에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6절) 그의 보잘것없는 음식은 고행자의 것입니다. 금욕적 생활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라 3,`1에서 약속한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요한은 ‘고운 옷을 입은’ 세상 사람들과(마태 11,`8) 달리 거친 옷을 입었습니다.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7절)을 선포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합니다. 오시는 분의 위대성에 비해 선구자는 종으로서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7절) 없습니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에 대한 지극한 존경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르단 강의 세례자는 예수님을 섬기는 이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8절)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요한은 그의 사자(2절)일 뿐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느님의 백성을 준비시키는 일을 했다면,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성령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예고했던 것처럼 인간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하며 하느님과 결속시켜 줄 선물입니다.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주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 36,`25­28) 아마도 요한과 초대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영을 받고 체험하며 누리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요한의 세례보다 탁월합니다.

 
요한은 굳이 불편한 생활을 고집하며 하느님의 뜻을 살폈습니다. 곧 오실 분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까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그의 소박한 생활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가 베푸는 용서와 회개의 세례로 모두들 예수님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분 발바닥도 쫓아가지 못한다는 자신의 분수를 그렇게 온몸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린 복음의 기쁨은 그분 키를 뛰어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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