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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는 지혜를 / 연중 제3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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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0 조회수202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모세는 어떤 이가 자식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여 집안을 일으켜라.’라고 했다. 사두가이와 예수님과의 이야기이다. ‘스승님, 일곱 형제 중,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여 자식 없이 죽었고, 둘째가, 그다음 셋째가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모두가 자식이 없었다면 부활 때에 그녀는 누구의 아내입니까?’라고 물었다. 일곱이 다 맞아들였으니 걱정 될 만하다.

 

이에 예수님이 이르셨다. “이 세상은 시집 장가 다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서는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하는 이들은 더 이상 시집 장가 없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 더 이상 죽음도 없다. 모두가 부활해 하느님 자녀가 되기에.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것은,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알았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닌,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는 모든 이가 다, 산 이가 되는 게다.”

 

아마도 사두가이들은 예수님 시대에는 지식인 그룹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 와, 일곱 형제와 혼인한 여인이 다시 부활한다면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답한 거다. 형이 자식도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혼인하여 대를 이어주는 게 이스라엘의 법이었다. 그러나 부활 뒤, 모든 형제가 다함께 다시 부부로 산다는 건 상식 밖이리라.


이렇게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저세상을 상식 밖 일로 취급했다. 무지몽매한 이들이나 저승을 믿는단다. 그들은 머리로만 부활과 저세상을 생각했던 거다. 예수님 앞에서 사두가이 지식은 억지였다. 이스라엘 지식인을 대표하던 그들이었건만, 편협한 모습을 못 벗었다. ‘지식도 하느님 앞에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님을, 우리는 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존재로 지금 이 시간 안에서 산다.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삶이 어제의 결과이고, 또 오늘 결실이 내일 삶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 안에 스민다. 나이 들어 외롭지 않게 살 수는? 병들었을 때 누가 나를 챙기랴? 그리고 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음에 대해서 그 절정에 이르리라.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이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우리는 그 이후를 경험해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곳 셈법을 잘 모른다. 습관적으로 이 세상 삶에 비추어 그 나라를 그려 보지만, 두려운 마음은 떨치지 못한다. 사실 그 나라는 이 세상 셈으로는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시며, 다시 우리의 시선을 오늘로 돌리셨다. 오늘을 성실히 살면서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면, 부활하신 그분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실 게고 이 확신으로 우리는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으리라.

 

부활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이지만, 누구나 다 받지를 못한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 따라 걷지 않으면, 부활의 삶에 동참하기 어려울지도. 그러나 믿는 우리는 다르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기에.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있던 십자가가 그 죽음을 준비하게 한다. 부활의 십자가가 우리를 이 세상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예수님은 저 세상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세상 것에 우리가 얽매이지 않게 지혜를 청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부활,사두가이,일곱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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