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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 주님공현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2021년 1월 6일 수요일(주님 공현 대축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5 조회수1,285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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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116일 수요일(주님 공현 대축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60,1-6

화답송 : 시편 72(71),1-2.7-8.10-11.12-13(◎ 11 참조)

2독서 : 에페소서 3,2.3.5-6

복음 : 마태오 복음 2,1-12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2390&gomonth=2021-01-03&missatype=DA

                   * 1 2일에서 8일 사이의 주일로 축일을 지내는 한국과 달리 교황님의 바티칸에서는 1 6일을 주님공현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미사 전례의 말씀은 한국의 주님 공현 대축일 1 6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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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21 16일 수요일

 

마태오 복음 사가는 우리들에게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을 때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오 복음 2, 11)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실한 영적인 성숙이고 때때로 긴 내적 여정의 열매입니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은 우리가 즉흥적으로 하는 어떤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경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목표를 잃어 버릴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상을 경배할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거나 우상입니다. 또는 프랑스 작가의 말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악마를 경배합니다”(Léon Bloy) – 을 인용하는 것. – 그리고 우리는 신자가 되는 대신에 우상 숭배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양자택일과 같습니다.

 

우리의 시대에 우리가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경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치는 것이 특히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묵상하는 방법을 훨씬 더 잘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흠숭 기도의 의미를 어느 정도 잃어 왔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계속 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 안에서. 오늘 이렇게 동방 박사들에게 몇 가지 유익한 교훈들을 배웁시다. 그들처럼 우리는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고 싶습니다. 그분을 진심으로 경배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헤로데가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했던 것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 경배는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배는 진심이어야 합니다!

 

말씀의 전례는 주님의 경배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더 온전히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세 개의 구절들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 구절들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눈을 드는 것” “길을 떠나는 것” “보는 것

 

첫 번째 구절, 우리의 눈을 드는 것은 이사야 예언서에서 우리에게 옵니다. 유배에서 이제 막 돌아왔고 엄청난 도전들과 역경들로 절망한 예루살렘 공동체에게 이사야 예언자는 용기를 주는 이 강력한 말을 합니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이사야서 60,4). 그는 그들이 그들의 피로와 불평을 치우도록, 사물을 바라보는 좁은 길의 장애를 피하라고 자아의 독단과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에 대한 걱정들 속으로 물러나는 끊임없는 유혹을 던져 버리라고 촉구합니다.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눈을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희망을 질식시키는 저 상상 속의 불안들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우리의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들과 근심들을 바라보는 일이고 주님께서 우리의 문제들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고 계시고 우리가 흘리는 눈물에 무관심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이 방식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계속 신뢰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녀로서의 감사한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우리의 마음은 경배에 열립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오로지 문제들에만 집중해서 바라볼 때 그리고 하느님을 향해 우리의 눈을 들기를 거부할 때 분노와 두려움과 혼란이 분노와 당황스러움과 초조함과 우울함을 일으키면서 우리의 마음 속으로 몰래 기어 들어갑니다. 그때 주님을 경배하기 어려워집니다. 일단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들의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결론들의 고리에서 벗어날 용기를 찾아야 하고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를 찾아야 합니다. 당신의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그분께 신뢰를 두라고 청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정말로 모든 사람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에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우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습니까?(루카 복음 12,28 참조). 주님을 향해 우리의 눈을 들어 모든 것들을 그분의 빛 안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결코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요한 복음 1, 14 참조) 그리고 언제나 우리와 계십니다(마태오 복음 28,20 참조).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서 우리의 눈을 들 때 인생의 문제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대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것들을 다룰 힘을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경배의 자세를 향한 첫 걸음은 그렇게 우리의 눈을 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배는 하느님 안에서 새롭고 예상치 못한 기쁨을 발견한 제자들의 그것입니다. 세속적인 기쁨은 언제나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면서 재산이나 성공 또는 그와 비슷한 것들에 기반을 둡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기쁨은 하느님 - 우리가 어떤 위험에 직면한다 해도 그 약속들이 절대 틀림이 없으신- 에 대한 충실함에 기반을 둡니다. 자녀로서의 감사와 기쁨은 우리 안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싶은 열망을 일깨웁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진실하시고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 도움이 되는 구절은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할 수 있기 전에 동방박사들은 긴 여정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마태오는 우리에게 그 당시에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오 복음 2,1-2). 여정은 항상 변모, 변화를 내포합니다. 여정 후에 우리는 더 이상 같지 않습니다. 항상 여정을 마친 사람들에 관한 새로운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배워 왔고 새로운 사람들과 상황들을 만났고 그리고 그들이 길에서 만난 역경과 위험들 속에서 내면적인 힘을 발견했습니다. 여정을 떠나는 것에서 오는 내적인 성장을 먼저 경험하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경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주님의 경배자가 됩니다. 예를 들면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서른 살에 경배했던 것과는 다르게 쉰 살에 경배합니다. 자기 자신을 은총으로 빚어 지도록 놓아두는 사람들은 보통 시간과 함께 발전합니다. 겉보기에 우리는 더 늙어 갑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으며 성장하면서 우리의 내적 본성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고린토 2 4,16 참조), 이 관점에서 우리의 실패와 위험들, 잘못들은 체험 학습이 될 수 있습니다. 종종 그것들이 주님만이 홀로 우리의 경배에 합당하시다는 것을 우리가 더 잘 알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그분만이 생명과 영원에 대한 우리의 가장 내면적인 열망을 채워 주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의 시련과 어려움들 신앙 안에서 경험되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 겸손하게 만들면서 그리고 그렇게 더욱 더 하느님께 열리도록 만들면서. 우리의 죄조차도 죄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 그런 나쁜 일들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 “그러나 나는 이렇게 했어요나는을 했어요만약 당신이 믿음과 통회와 뉘우침으로 그것에 다가간다면 그것은 당신이 성장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바오로는 모든 것이 심지어 우리의 죄조차도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토마스 성인은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죽음까지도(etiam mortalia), 나쁜 죄조차도 가장 나쁜 죄조차도. 그러나 당신이 통회로 응답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만나러 가는 이 여정에서 당신을 도울 것이고 그분을 더 잘 경배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이 여행의 피할 수 없는 불편함으로 특징되어지는 삶의 여정에서 배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피곤함, 우리의 쓰러짐 그리고 우리의 실패들이 우리를 좌절시키도록 둘 수 없습니다. 그대신 그것들을 겸손하게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을 주 예수님께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분이신 그분께로 향하는 여정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걸음마다 우리의 덕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눈을 계속 주님께 고정시킴으로써 우리는 다시 새로워지는 기쁨으로 인내하는데 필요한 힘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세 번째 구절로 갑니다. 보는 것. 우리의 눈을 드는 것. 길을 떠나는 것. 보는 것.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오 복음 2, 10-11). 경배하는 것은 군주와 고관들에게 하는 경의의 행위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났다고(마태오 복음 2,2 참조) 알고 있었던 한 분을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재로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들은 가난한 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먼 땅에서 온 이 현명한 사람들은 저 비천한 환경을 넘어서서 바라 볼 수 있었고 그 아기 안에서 임금의 현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모습을 넘어서서 수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아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들은 무엇보다 그들 내면의 영적인 경배를 표현했습니다.. 그들 자신의 마음을 봉헌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선물로서 그들이 가져왔던 보물 상자를 여는 것.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주 기만적이라고 판명되는 보이는 것들의 베일을 넘어서 보아야합니다. 헤로데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겉모습과 즉각적인 매력들의 노예가 되어 있는 세속성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겉모습의 노예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매력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보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선정적인 것들,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들만 중시합니다. 우리는 그러나 동방 박사들 안에서 매우 다른 접근 방법, 우리가 신학적 실재론 매우 고상한단어, 그러나 유용한 으로 정의할 수 있는 한가지를 보는데 그것은 사물들의 객관적인 실체를 인식하는 방법이고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겉치레 과시를 피하신다는 깨달음으로 이끕니다. 주님께서 겸손함 안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겸손한 아기와 같은데 그 아기는 바로 세속성의 산물인 저 겉치레 과시를 피하십니다. 보이는 것을 초월하여 보는법 그리고 자주 모든 상황들 속에 숨어 계시는 가난한 사람들과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우리가 경배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보는 법. 소리와 격정으로 인상에 남지 않지만 모든 상황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찾는 그리고 주님을 찾는 보는 법, 성 바오로와 함께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시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고린토 2 4,18)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삶으로 모든 인간을 위한 그분의 사랑 계획을 보여 줄 수 있는 진정한 경배자로 만들어 주시기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전체 교회를 위해 경배하는 것을 배우는 은총, 계속 경배하고 이 흠숭 기도를 자주 드리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흠숭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번역 2021. 1. 15. 금요일 01:41)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1/documents/papa-francesco_20210106_omelia-epifania.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1/1/6/messa-epifania.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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