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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07 조회수1,043 추천수20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순 3주간 월요일 -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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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큐 프라임에서 남녀의 차이를 알아보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먼저 남, 녀 각 8명씩의 아이들을 택해서 실험을 합니다. 그들은 남, 녀 쌍을 이루어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즉, 남부터미널 앞에서 만나서 검은색 자동차에 타고 남부터미널 뮤지컬 댄싱쉐도우 간판을 지나 방송국까지 데려왔습니다. 운전자는 자신은 강남구에 산다고 하고 차 안에서 노래는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주고 제목까지 모두에게 똑같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차의 색깔은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남자는 대부분 기억했습니다. 남자들은 운전자가 강남구에 산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여자들은 대부분 기억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남부터미널에서 만난 것을 기억했지만 여자아이들은 지하철이나 그 주위를 대답합니다. 물론 비발디의 사계를 기억하는 것은 여자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1분 내에 자전거를 그려보라고 했더니 남자는 페달과 체인, 프레임 등 핵심적인 것들을 잘 그려냈지만 여자들은 자전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잘 그려내지 못했습니다. 기울어진 물병을 그려도 물도 함께 기울여서 그립니다. 물은 언제나 수평인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은 사람의 얼굴과 나이 등에 대해 기억을 잘 했지만 공간의 변화에 대해서는 둔감하였습니다. 물론 언어능력에서는 여자가 훨씬 더 뛰어납니다. 주차는 남자가 더 잘 하죠. 남자는 여러 가지 일을 절대 동시에 못 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순서를 정해서 체계적으로 일을 해 나갑니다.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금방 공감을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런 차이들은 과연 남자가 더 낫고 혹은 여자가 더 잘 한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왜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이런 차이를 주셨을까요?

이것은 사과와 오렌지가 서로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이지 누가 더 낫다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혼자서는 완전하지 못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둘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야 완전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이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상대의 잘못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물론 구조상 말로는 남자가 여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남자는 통합적 체계화 능력이 뛰어나고 여자는 상대의 감정에 대해 큰 공감화 능력이 있습니다. 남자는 사회 활동에, 여자는 아기를 키우는 등의 가정 살림에 적당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합니다. 나와 다른 상대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혼자서는 절대로 온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그렇듯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면 인간은 불완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려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 지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도 잘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하느님, 즉 ‘나’가 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 자아가 바로 교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변한 모습을 좀처럼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나자렛 사람들에게 당당히 예수님은 “어떤 예언자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대접받지 못한다.”하시며 그들의 심기를 건드십니다. 예수님은 그런 말을 해 봐야 그들이 화만 낼 것임을 아십니다. 그렇더라도 당당히 해야 할 말을 하시고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다만 한 명이라도 그 말을 듣고 회개한다면 모두가 당신을 미워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이런 미움들이 계속 증가하여 예수님은 그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고 돌아가시게 됩니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 죽을 수 있느냐?”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당신의 예언직 때문에 죽어야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만이 필요할 뿐이고 자신이 하느님입니다. 이것이 내가 버려야 할 자아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본래 우리들은 ‘나’라고 한 그분으로부터 나온 피조물일 뿐입니다. ‘나’라는 이름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나’가 너무 강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나의 ‘나’ 때문에 우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특별히 그 분이 찾아오셨던 고향이 우리들이라면 우리가 나자렛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신부입니다. 그리스도도 우리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부족함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처럼 그 채워주려는 마음에 화를 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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