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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열 신부님 강론 말씀 묵상[Fr. 토마스 아퀴나스]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07 조회수404 추천수5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감곡성당 매괴의 성모님-루르드에서 모시고 왔으나 지금은 매괴의 성모님으로 불리심-photo by 느티나무

 

 

 

 

감곡성당의 유래를 알아보면


1894년 프랑스의 부이용(임가밀로)이라는 신부님께서 사제서품을 받고
여기서 40분 정도 떨어진 여주의 부엉골에 발령을 받아 사목을 하셨는데,
그곳은 우리나라 두 번 째 신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그때는 이미 한불조약이 체결된 이후라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지는 않았다.

 

임가밀로신부님께서 사목하시는 곳을 옮기려고 하던 차
이 곳을 지나시다가

산밑에 대궐 같은 집(지금의 매괴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이 있는 것을 보셨다.

 

그 109칸의 대갓집에 누가 살았느냐?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 민흥식이 살고 있었으며

바로 민비의 6촌 오빠였다.
그가 임오군란 때 민비를 숨겨 살려 준 대가로

지주 여섯 명이 돈을 모아 지어준 집이었다.


민흥식은 당시 충주목사로 있었는데 

 

 

그래서 사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무염시태 기적패를 집 곳곳에 묻어 두고 성모님께 기도하셨다.

 

그해 10월 12일에 을미사변(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나서

의병과 일본군이 맞서 싸우면서
109칸 집에 불이나 다 타고 22칸만 남았다.

민흥식은 서울로 압송되었으며, 남은 식솔들에게 그것을 처분하라고 하였는데


그 때 임가밀로 신부님께서 199달러에 6만여 평의 그 집을 사셨다.
그 당시의 가격으로도 거저 얻은 것이었다.

 

임가밀로신부님께서
타고 남은 22칸 가운데 방 몇 개를 터서 사목을 시작하신 것이다.

 

1903년에 두 번째 성당을 지금 성당의 절반 크기로 지으셨는데
1958년 매괴고등학교를 지으면서 헐어버렸다.


그 구 성당을 복원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이다.

 

1920년에 신자 900여명이 곡괭이로 돌을 깨서 이 성당이 들어 갈 터를 만들었다.

 

'아니, 이왕이면 앞 마당을 크게 만들지!!!'

 

그러나 곡괭이로 파고 가마니로 흙을 실어 날랐기에

터를 닦는데만도 삼년이 걸렸다.


 

크기와 모양도 명동성당과 같이 했으나, 그 크기가 줄어든 것은 자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성당 지을 벽돌을 여주에서 마차에 싣고 오다가

일본 순사에게  1/3이나 빼앗겼기에 성당의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1930년에 성당을 짓고 2년 후
임가밀로 신부님은 일본파출소에 있는 벽돌을 내놔라 하여
1934년에 중부지방 최초의 돌집을 지으셨다.
이 건물을 보고자 부산, 마산에서 마차를 타고 구경을 왔었다.

 

임가밀로신부님께서는 1896~1947년까지 이 곳에서 사목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임신부님은 백마를 타고 흰수염을 길게 기르셔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분처럼 보이셨고

그 행차는 임금님행차에 버금 갔다고 한다.


제가 15~20년전에 공소미사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을의 누군가 포도청에 잡혀 가면 반지의 제왕 같은 분이 와서 뭔가를 보여 주면

포도청장 이하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잡혀갔던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풀려났으며

신부님은 말에다 풀려난 그 사람을 태우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어패' 라는 것인데

고종황제께서 '이 어패 보기를 짐 보듯 하여라!' 

라고 써서 가밀로신부님께 하사하신 것이라고 한다.

 

임가밀로신부님의 무덤은 산중턱에 있었는데 1981년에 이장해서
지금은 성당의 제대 왼쪽에 묻혀 계신다.

 

그 분께서 돌아가신 지 60년이 되는 내년에 성모순례지로 선포될 것이다.


순서로 말하면 순례지 다음에 성지가 된다.

 

우리나라에  '남양성모성지' 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성모성지가 아니다.
그 곳은 성모님을 사랑하는 한 사제가

치명자라고 묘소가 있는 곳을 아름답게 가꾸어

순례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성모성지라고 선포한 것이다.

 

여기는 110년동안 성모님의 수많은 역사가 일어난 곳이다.


그 예로 1943년 당시 프랑스와 일본은 적대관계였으며

프랑스신부님과 일본인 사이는 좋지 않았다.


일본은 지금의 성모님 광장에 신사를 지으려고 했다.


임가밀로신부님께서는 무염시태 기적패 수십개를 묻고
"성모님, 절대로 신사가 지어지면 안 됩니다." 라고 기도하셨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자재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눈 감고도 못을 치는 목수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도 못질을 못하였고
장도리가 못을 피해가며 자신들의 손을 때리는 것이었다.
목수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때론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이 곳은 백두대간의 줄기가 아님에도

호랑이나 곰이 나타나서 으르렁  대기도 했다.


그들은 194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후 해방이 될 때까지 나무판대기 하나 세우지 못하고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 산은 성모님이 지켜 주시는 특별한 산이다.

 

임가밀로신부님이 돌아가시고 보좌신부님이 주임신부님으로 되셨는데
6.25가 일어나서 이 성당을 인민군들의 회합장소로 쓰게 되었다.


그들이 회의를 할 때

바람 소리가 '휘~이익~~' 나면서 
성당 천정 위로 불덩이 세 개가 돌아다녔다.

 

어느 날 인민군들이 잠을 자고 있는데

"꽝!" 소리가 나서

'국군이 대포를 쏘았나보다!'  하고 놀라서 깨어 보니

입구에 있던 돌로 된 성수대가 

저절로 넘어지면서 성당 마루바닥을 깨기도 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처음에 인민군들이 들어왔을 때
어떤 여편네가 남자들을 째려보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여
성가대석 있는 곳으로 가서 성모님의 명치끝을 향해 총을 정조준 해서 쏘아

그 곳에 총알이 박힌 구멍이 있으며
오른쪽 가슴에 한 방, 아랫 배 쪽에 두 방. 옆구리, 허벅지에 각각 한 방씩 쏘았다.


그러나 석고로 만든 성모님상은 깨어지지 않았고

인민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렸다.
대뜸 따발총으로 성모님을 향해 쏘아대기 시작했으나

총알이 빗발처럼 퍼붓는데도

단 한 방도 성모님께 맞지 않고 모두 피해가며 벽 쪽으로 흩어졌다.

 

총알은 돌면서 앞으로 나가기에 바깥으로 나갈 때는 큰 구멍을 만들지만
성모님은 아직까지 그 일곱 발의 총알을 당신 몸에 품고 계신다.

이것을 사람들은 '성모 칠고' 라고도 말한다.

 

왜 성모님은 부서지지 않으셨을까!!!
그 암울한 상태에서 미사도 못 드리고 단지 묵주기도만 하던 시대에
어머니마저 무너지면 그 주춧돌이 흔들리기에
어머니는 그냥 버티고 계신 것이다.

 

그 고통의 흔적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하신 채~~

 

화가 난 인민군은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망치로 내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성모님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너무나 빛이 나서~~
그 빛에 눈이 멀어지는 듯하여

그는 손에 들려 있던 망치를 버리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인민군들은 성당 벽조차 만지지 못하였으며
성모성심의 상처로 귀중한 유물들은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그 당시 전쟁터로 잡혀 가려던 동네청년들은

모두 성당 안으로 피신을 했으며
청년들이 성당 안에 있음을 알면서도 인민군들은 들어올 재간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미온, 괴산 성당에 있을 때
그 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은 7~80대 노인들이 지금도 증언하고 있다.


그 후부터 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신자들은 1억단 묵주기도 봉헌을 하고 있다.
1차적으로 순례지가 될 것이고 2차로 성지가 될 것이다.

 

  -다락방 미사 중 신부님의 가르침중에서-

 

 

☆성모님상 앞에서 많은 사람에게 치유의 기적이 일어 났으며

액자로 된 판넬사진에서도 치유가 일어납니다.

 

순례지- 국내의 신자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장소

성지- 전세계 신자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장소

  
   

 

 

 

 

임가밀로신부님께서는 그 집이 너무나 사고 싶으셨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로사리오의 마리아> 음악 김웅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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