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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80)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03 조회수47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0년3월3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 예레미야서18,18-20;마태오20,20-28 - 
 
 
  (480)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이순의
 
 
아주 오랫동안 십자가의 길 14처 중에서 내가 제일로 따라 걷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시몬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잠시라도 대신 져 드릴 수 있는 인생이 있다면 기꺼이 져 드리고 싶었다. 사형선고는 받을 용기가 없었고, 더구나 주님 때문에 못이 박힌다거나 매달린다거나  죽어서 무덤에 묻힌다거나 그럴 용기는 더욱 없었다. 내가 만약 십자가의 길에 서서 구경꾼이 된다면 시몬처럼 잠시라도 그 무게를 덜어드리고는 싶다고 기도 했었다. 그래서 한두 해 묵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세월동안 묵상을 했었다.
<제 인생 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시라도 그 십자가를 져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시몬이 되게 해 주십시오.>
아마도 이 묵상이 20대 초반부터 시작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여  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벌여놓으신 사업과 유지를 떠맡으신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그 불확실한 내일이 두려웠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처럼 어머니가 불쌍한 적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아도 어머니의 인생은 그 몇 년이 가장 안쓰럽고, 가장 불쌍하기만 하다. 오히려 지금의 어머니는 전혀 안쓰럽다거나 불쌍하다거나 그런 마음이 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어머니의 연세만큼 나이가 지긋해졌을 때 지금의 어머니만큼 건강할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만큼의 다복한 환경을 누릴 자신은 더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고령화로 흘러가면서,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고, 갈 곳도 잃고, 있을 곳도 잃어버린 노령인구의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지금의 어머니만큼 내가 살아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처녀가 짝 잃은 어머니를 지켜보며 결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머니께 거역하지 않는 삶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동기였는지는 모른다. 아주 오래된 기억 저편에서부터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서 제가 시몬이 되고 싶다고 묵상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버릇은 굳이 내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느라고 14처 앞에 서지 않아도 무슨 도달할 목표처럼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삶이 진행되지 않았다. 진정한 고통! 바른 생활! 열심히 하는 노력! 근면한 절제! 부지런한 희생! 이런 명목의 노력만이 아버지의 길을 따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다. 뭔가 이상한 기류를 어린 끄트머리 자식이 범접할 수 없는.......! 그런! 한없는 걱정과 근심들을 두고 참 맑은 처자의 몸으로 시몬이 되는 길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표현을 그때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폭도 좁았을 것이고, 설령 이런 표현을 한다고 한들 누구 들어줄 귀가 없었을 것 같다. 그것이 그때의 상황이었다. 
 
본당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모든 십자가를 지고 갈 생각은 하지마라.
공동체생활은 인생의 도피처가 아니다.>
그 말씀이 그렇게 사무치게 들렸었다. 그러나 그 말씀의 뜻은 해석이 되지 않았다. 세월이 이렇게 흐른 후에도 그 신부님의 말씀이 목소리까지 생생한데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의 뜻이 헤아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시몬이 되고 싶었고, 시몬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시몬이 된다면 어머니를 구할 것 같은!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내가 봉헌된 삶을 살게 된다면 내 어머니께서 이 고통에서 구원될 것 같은! 그렇다면 기꺼이 시몬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신부님의 말씀은 이유도 없이 나의 심장을 뚫고 계셨다. 저 신부님은 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실 텐데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시몬이 되고 싶은데, 시몬이 되려하는데.......
 
시몬에 관한 나의 화두는 끝이 없었다. 공동체에서 나왔을 때도, 장애자 시설에서 봉사할 때도, 어머니의 우격다짐으로 시집을 와서 가정을 꾸렸을 때도 그 시몬이 대신 진 십자가는 계속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의 십자가는 한 번만 지고 마는데, 내 시몬의 십자가는 끝이 없어보였다. 어느 날은 짝꿍의 시몬이 되었다가, 어느 틈에는 시동생들 줄줄이 딸린 시어머니의 시몬이 되었다가, 그러다가보면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고는 목숨뿐인 시동생들의 무지와 밥벌이 까지도 등짐으로 져야하는 시몬이 되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몬이 되겠다고 하지 말 것을! 참 후회도 많이 했었다. 뭐 하러 시몬은 된다고 해서 이 꼴이 되었더라는 말인가?! 차라리 세 번이나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겠다고 할 것을! 그랬다면 넘어졌다가 일어날 것이고, 시련 뒤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었을 것 아닌가?! 이놈의 시몬은 남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하니 내 꼴이 이 꼴이 아니겠는가?!  
 
그러고도 그 시몬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시몬이 아닌 나의 인간적 심리만 들춘다면 제일 먼저 짝꿍을 버려야 했고, 짝꿍을 버린다면 내 자신이 내 스스로에게 시몬이 되면 좋으련만 낳은 자식이 있으니 내 자식에게 나의 십자가를 떠넘기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시몬으로 살자! 여러 사람에게 짐이 되는 십자가는 되지 말자! 그래! 나는 시몬이다. 나는 시몬이다.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지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저 사람들이 주님께서 지고 가신 그 십자가이며, 나는 시몬이다. 그러니 잘 지고 가야한다. 그 최면이 없었다면 이 삶을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시몬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시몬이 나에게 얼마나 크게 필요 했을 지를 하느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늘 시몬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 14처 중에서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지는 묵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묵상은 걸어가면서도 해온 터라서, 의식적으로라도 그 시몬을 불러 보았다. 그런데 그 시몬은 내게서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불러들이기는 하는데 금방 다른 묵상을 하거나 다른 생각에 취해서 나를 깨워야만 했다. 굳이 깨어서 정신을 차려도 그 시몬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믿음이 떠났는가? 나에게 기도가 없어졌는가? 언제부터 나에게서 시몬이 멀어졌는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명지 되었다. 30년 가까이 내 곁에서 나랑 함께 살아온 주님의 시몬이 언제 나도 모르게 멀어졌는지? 그리고 사순절 묵상을 쓰게 되면서 시몬이 멀어지게 된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제 나에게는 대신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없어졌다는 깨달음이었다. 나에게 남은 십자가는 내 십자가만 남아 있었다. 내가 그토록 안쓰럽게 여기며 구원해 드리고 싶었던 어머니는 마음조차도 내게서 멀리 계셨다. 그나마 노후가 편치 않으시다면 자식이니까 걱정이야 되겠지만 큰오빠랑 새언니께서 크나큰 홍복이 있으셔서 어머니께서 강건하시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 그리고 또 한 어머니! 시어머니! 그냥 가만히 계셨으면 시몬의 길을 선택한 내가 어찌어찌 해 드렸을 텐데....... 당신 친히 등을 돌리셨으니 벼랑 끝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동아줄이 끊어지듯이 어느 틈인지 모르게 끊어져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인생이었나 보다! 아무리 말로 가르쳐줘도 통하지 않던 시동생들도 제 업보에 따라서 갈림을 받았다. 어머니를 놓으니 시동생들도 다 놓아져 버렸다. 무엇보다도 시몬이 되어 등에 십자가를 진 나를 짝꿍이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눈꺼풀에 연탄재를 뿌렸는지? 눈알에 검은 렌즈를 끼웠는지? 보여줘도 보이지 않는다던 짝꿍의 눈에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내 십자가를 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학업이 많이 남은 아들의 학비도 주어야 하고, 평생을 가난하게만 살은 짝꿍에게 집도 번듯한 걸로 사 주고 싶고, 그리고 아들 녀석 장가도 보내야 하고, 그리고 그동안 내 눈에서 눈물 날 때 눈물 닦아주신 은인들께 보답도 해야 하고, 도와 드리다가 한동안 멈추었던 분들을 찾아서 다시 도와 드려야 하고,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선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산에 가서 곡식을 일구는 일을 천명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아졌지만 그 모든 것이 다 내 십자가만 남아 있다. 시몬을 불러서 내가 시몬의 길을 가고 있다는 위로를 구해야 할 만큼 이타적인 십자가는 어느새 내려져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내려 놓으려 한 적도 없었고, 내려놓겠다고 할 만큼 제 정신으로 살지도 못했는데! 내게서 시몬이 동무가 되어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 마음이 초연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제 내 십자가를 져야 한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라고 수긍해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의 삶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가 누군가의 십자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야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하더라도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서 시몬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나에게 시몬이란 동무가 필요했던가 보다. 시몬이 있어서 위로 받으며 걸어 온 길이지 않았던가?! 주님께서 내게 시몬을 보내주신 길!
<네가 모든 십자가를 지고 갈 생각은 하지마라.
공동체생활은 인생의 도피처가 아니다.>
신부님께서 그렇게 젊은 어린 날에 해주신 한 말씀을 이제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십자가의 고통은 나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의 시몬이 되기도 하고, 네가 나의 시몬이 되기도 한다. 삶은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반드시 시몬을 보내주신다. 그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을지라도 아시는 분이 있다. 나의 인생길! 그 길에 동무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분! 그분께서 다 알고 계신다. 네가 나의 시몬이 되는 것도, 내가 너의 시몬이 되는 것도, 그분께서 가자하시는 대로 가야한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태오20,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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