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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심이신 하느님께 올인(all-in)하는 삶" - 2.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3 조회수349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13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열왕기 상12,26-30;13,33-34 마르8,1-10

                                  
 
 
 
 
 
 
"중심이신 하느님께 올인(all-in)하는 삶"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바라보는 ‘눈’입니다.
판단의 잣대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가’입니다.
 
다음 성규(RB)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천상으로부터
  매시간 항상 자신을 내려다보시고,
  자신의 행동을 하느님께서 어디서나 살펴보시며,
  또 천사들이 매시간 보고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이다.”(RB7,13).

말 그대로 하느님은 온통 바라보는 ‘눈’입니다.
 
‘하늘 두려운 줄 알라.’는 말 역시
늘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눈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런 하느님 눈앞에 떳떳하면,
보시기에 좋으면 개의할 바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잊을 때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입니다.
 
비극적인 사실은
하느님 중심을 잊음과 동시에 나를 잊는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의 상실이요 영혼 없는 삶입니다.
목표 없는 삶, 중심 없는 삶, 방향 없는 삶, 의미 없는 삶이요,
마음 둘 곳 없어 정처 없이 방황하는 허무한 삶입니다.
 
바로 1독서의 예로보암이 이런 유형의 삶입니다.
 
나라가 다윗 집안에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우상들을 만들어 섬기기 시작한 예로보암은
하느님을 잊음과 동시에 나를 잊었습니다.
 
좌충우돌, 막나가는 삶입니다.
 
길을 잃으면
하느님 제자리의 중심에 돌아와 다시 시작해야 하는 데
그냥 밖으로 계속 우상들을 만들고 섬기는 삶입니다.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마지막 결론과도 같은 구절,
하느님 중심을 잊고 온
갖 세상 우상들을 섬기며
자기를 잊고 살다가 허무하게 마치는 인생을 상징합니다.

예로보암의 삶,
복음의 예수님이나 우리의 삶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느님 중심만을 찾아 올인하는
예수님의 삶이자 우리 수도승의 삶입니다.
 
중심이신 주님만을 향할 때 정체성 또렷한 참 나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절박한 한계 상황에서
혼자 결정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중지를 모읍니다.

“너희에게 빵 몇 개나 있느냐?”

“일 곱 개 있습니다.”

무(無)에서서의 기적이 아니라
제자들의 빵 일곱 개 정성을 바탕으로 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기적입니다.
 
제자들이 전부 내놓은 빵과 물고기를 들고 감사를 드리고 축복하시자
놀라운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온전히 중심이신 하느님께 올인하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삶의 중심이신 하느님께 올인(all-in)하는 삶일 때의
풍성한 축복을 상징합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이루면 거기 머물지 않는다는 노자 말씀처럼
기적 후 군중들을 돌려보내고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성령 따라 유유히 달마누타 지방으로 떠나는 주님이십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만나로 배불리신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는 굶주린 군중을 빵으로 배불리시고
오늘 이 미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양식으로 우리를 배불리십니다.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시편145,15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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