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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룻밤이라도 다숩게 살다 죽었으면...>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3 조회수378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룻밤이라도 다숩게 살다 죽었으면...>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 새로 지은 아파트며 빌라들이 낡고 허름한 주택들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주거 밀집 지역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앞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관심 가질 만한 여유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우린 생존을 위해 기계처럼 일해야 하기에. 당연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이웃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2월초 우리 이웃들 삶의 실상을 들여다볼 기회가 찾아왔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에서 '에너지기본권 확립을 위한 실태조사'를 요청하면서 여러 가구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는 겨울 추위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든 3일과 5일 오전이었다. 앞집 사는 당원과 함께 신사동 지도에 표시한 단전세대를 중심으로 찾아 나섰다. 집 근처 빌라와 빌라 사이에 비닐로 입구를 막은 허름한 다세대주택.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이 흡사 '벌집 촌'을 연상시킨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런 곳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층 단전세대는 인기척이 없다. 2층으로 올라가니 1층과 비슷한 구조에 닥지닥지 방들이 붙어있다. 마침 한 할머니가 구부정한 자세로 문을 닫고 나오신다.

 

복지관에 밥 얻어먹으러 가신다는 할머니를 붙잡았다. 겨울철 난방비 등 조사 나왔으니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십사 요청했다. 이아무개 할머니(79)는 두 말 없이 방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쪽방보다는 조금 넓은 3~5평 남짓 방 안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밖이 안인지, 안이 밖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라고 할까. 낡은 창문엔 문풍지가 발라져 있고 벽면마다 옷가지며, 이불, 취사도구 등 살림살이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할머니 춥지 않으세요? 겨울철 난방은 어떻게 하세요."

"기름보일러는 고장이 나서 못 쓰고,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지 뭐."

 

보일러를 고쳐서 쓰면 좋으련만. 이 할머니는 기름보일러를 고칠 돈도 연료를 살 돈도 없으니 그냥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의 유일한 수입은 길을 쓸고 휴지를 줍는 등 취로사업으로 버는 24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돈이 없어 취사용 LPG가스도 1년이 넘도록 쓰지 않고 있었다. 쌀과 반찬은 주민자치센터나 복지관에서 주는 것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수급도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 따로 사는 아들은 벌이가 시원찮아 용돈 줄 형편도 안 된다. 대개 독거노인의 형편은 이와 비슷하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추운 것만 해결되면..."

 

바로 옆집 독거노인 윤아무개 할머니(85)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취로사업은 근력도 달리는 데다 그나마 일감도 끊긴 지 오래 됐다. 딸이 있어 수급자혜택도 받지 못하는 할머니의 유일한 수입은 노령연금 8만8천원이 전부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일러에 비싼 기름을 땔 수도 없고, 전기장판도 돈이 아까워 꺼놓기 일쑤이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추운 것만 해결되면 좋겠어." 윤 할머니의 겨울나기는 버거워 보였음에도, 말 걸어주는 이가 있어 잠깐의 행복을 만끽하는 표정이었다.

 

또 다른 곳. 신사2동 237번지. 가파른 고개 길에 낡고 허름한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집밖에 수북이 쌓여있는 폐지가 눈에 띄어 문을 두드렸다. 이곳에서 18년째 살고 있다는 유아무개 할머니(75)는 뇌성마비 장애인 아들과 살고 있다. 아들의 장애수당 16만원은 고스란히 사글세 비용으로 들어가고, 노령연금 8만8천원과 폐지를 팔아 남는 몇 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이다.

 

"하루 저녁만이라도 따숩게 한 번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난방비 조사 나왔다는 소리에 유 할머니가 대뜸 하는 소리였다. 긴 겨울 추위가 오죽 지긋지긋하고 한이 맺혔으면 이럴까. 이 집은 도시가스가 설치되어 있지만 겨울철 10만 원이 넘게 나와 겁이 나서 못쓰고, 전기요금 걱정으로 전기장판도 없앴다. 지하창고에는 200장 연탄을 지원받아 때고 있지만 방을 데우지는 못한다. 그저 보리차 끊이고 온수로만 쓰고 있는 상황. 가스요금이며 전기요금 할인제도도 알고는 있지만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 신청하나마나 똑같고 할인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유 할머니는 "도시가스비만 덜 들어갔으면 좋겠다"며 "반값이라도 (가스비) 할인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 시급한 에너지복지의 길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보통 10~20만 원이 나오는 난방비는 일반가정들도 부담스런 금액이다. "이번 겨울이 추워서 난방비 적게 나오는 집이 부럽더라고요." "낡은 집이라 외풍이 세서 난방해도 한 것 같지도 않아요." "난방시설 바라지도 않으니 전기료라도 조금 보태주면 좋겠다." 등등. 가옥주건 세입자건 겨울철 난방비 걱정은 한결 같았다.

 

그런데 거동조차 불편한 독거노인들과 장애인들이 한 겨울을 나기에 우리나라의 에너지복지정책은 너무나 멀리 있었다. 방이 절절 끊을 정도로 도시가스며 기름보일러를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노후건물의 벽과 지붕의 단열효과 개선, 창호교체, 틈새수리, 보일러시설 교체, 연료지원 등등. 저소득층 상당수가 낡고 허름한 주택에 사는 만큼 이런 집을 고쳐주고, 요금할인 등 실효적인 에너지복지 대책을 내놓는 것이 시급하다. 복지관 직원들이 전해주는 담요 이상의 절실함이 동네 곳곳에 깊은 한숨으로 배어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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