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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6 조회수505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5:20-26)
 
우리는 비교적 쉽게 자신의 악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자신의 독선(獨善)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라사이들은 아주 독선적인 사람들이었다. 독선도 선(善)이며 덕행(德行)이다. 예수님조차도 함께 일하실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은 “너희의 덕행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덕행보다 더 훌륭하지 않으면…………..”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강조하던 수많은 율법에 하나도 더 보태시지 않고 오히려 그 율법을 폭넓게 해석하셨다. 만약 수천 평의 땅을 갖고 있는데 돌밭이라면 아무 농사도 지을 수가 없게 된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을 깊게 파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행동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깊은 내면적인 삶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그 삶은 시들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옳은 그리스도인도 되지 못한다. 바리사이들은 ‘별(別)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골방에서 피정하면서 그곳을 피난처로 삼았다. 율법에 따라 골방을 택하고 매일의 삶을 율법에 얶매여 살았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달리 깊은 내면적인 삶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즉 우리들의 행동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깊은 내면적인 삶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사소한 일에 얶매이고 만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바리사이들과는 정반대로 눈 멀어 있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깊은 내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이기적인 만족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사이들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 감추어져 있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든 말씀이 육화가 되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듯 ‘말씀’ 즉 ‘육화가 되신 그리스도의 행동’을 본받고 살아야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루카 12:2-3)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이를 잘 표현하였다. “내면적인 삶을 포기하거나 무시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내면적인 삶 안에서 내면적인 삶을 통하여 행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외적인 일이 내면적인 삶을 못하게 방해할 때에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느님과 협력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불교 신자들은 피난처를 ‘부처’ ‘가르침’ ‘출가 수행자들의 공동체’에서 찾는다.
이를 그리스도교 식으로 말하면 피난처를 ‘하느님 안에서’ ‘예수님(말씀) 안에서’ ‘교회 안에서’ 찾아야 한다. 가톨릭은 보편적인 삶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삶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덕분이다. 우리들의 의로움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율법을 고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느님 외에는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철저히 죽어 보아야 이 뜻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의로움은 하느님의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이 은총을 받게 되면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의 말대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는 방법도 잘될 것이다.” 
결코 손해 보는 삶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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