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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미사의 준비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6 조회수1,149 추천수2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순 1주간 금요일 - 미사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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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사형제가 합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13년 전의 찬성-반대, 7-5에 비해 이번엔 5-4로 근소하게 찬성이 선택되었습니다.

인터넷 서울 연합뉴스엔 “사형제 합헌에 탄식한 ‘사형수 대모’”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렸습니다. 바로 20년이 넘도록 사형수들을 찾으며 뉘우침을 도왔던 올해 79세의 조 모니카 수녀님입니다.

수녀님은 처음부터 재판을 지켜보았고 합헌 결정이 나자 헌재 주차장 한편에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한 채 우울해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녀님들과 신자 분들의 위로에 “애들 어떻게 하느냐”며 마음아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재판관들이 결정을 내렸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라며 ‘인간 생명은 존중받아야 하고 지구보다 더 무거운 게 사람 생명인데… 회개가 되어가고 잘 살아가려는 그때 죽을 날도 알리지 않고 집행하는 것은 참 잔인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 밑에 달린 의견들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리플을 달았습니다.

대부분의 의견은 사형은 꼭 사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종교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고 수녀님에 대해서도 ‘사람을 죽인 사람이 사람인가? 혹은 너도 한 번 피해자들처럼 당해 봐라.’라는 식의 심한 욕설을 써놓은 것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겠지.’하며 밑으로 계속 읽어 내려갔습니다. 읽어내려 갈수록 더욱 마음만 무거워졌고 결국 30-40개의 악플을 읽고서야 찬성의 글을 한, 두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들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당한다면 그 땐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사람인가?’ 하면서 사형제를 옹호하면서 비록 우리 손으로 죽이지만 않을 뿐이지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많은 아픈 사연 중에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듣는 것만큼 마음 아픈 사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본당에 있다 보면 이런 사연을 가끔 접하게 됩니다.

특별히 부부간의 신의를 지키지 않아서 가정이 파괴가 되는 경우는 더 가슴 아픕니다.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새로 만난 사람과 잘 살아가는데 버림을 받은 사람은 병에 걸려 일찍 죽는다든지 자녀를 키우기 위해 혼자 궂은 일을 하며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신의를 저버리는 것도 일종의 살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바람피우는 사람을 다 죽여야겠습니까? 나는 과연 어떤 누구에게도 잘못하는 것이 없어서 그렇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는 것입니까? 죽을 죄를 지어서 죽어야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면 고해성사 때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다가 뉘우치며 앞으로는 가정에 충실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또 세상에 알리고 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크건 작건 하느님 앞에 다 죄인입니다.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려 나오는 이유도 우리 죄를 용서받고 또 용서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다른 이들의 잘못에 대해 미운 감정만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은 우리 죄를 어떻게 용서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성전에서 기도는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일러주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부부가 온전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서로 보이지 않는 밖에서도 신의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들인 우리들도 미사를 드리러 오기 이전에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하였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죄를 짓는 것이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대해 신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의 유일한 계명을 주신 그리스도께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신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그들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믿고 지키지만 그것과 관련된 것들은 지키지 않습니다. 형제들에게 화를 내고 미워합니다. 큰 죄는 사실 다 작은 것에서 비롯됩니다.

“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지금은 교만하여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지만, 사실 ‘상황’이 그리되면 우리도 사형자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같은 죄로 취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은 절대 용서 못한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정의 자체이시기에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미사를 하고 많은 예물을 바쳐도 용서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먼저 예물을 바치기 전에 화해하고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의 준비는 봉헌금을 준비하고 몸만 성당으로 와서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구원받아야 하는 온전한 영혼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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