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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치유 - 김웅열 신부님 강론 말씀 묵상[Fr. 토마스 아퀴나스]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5 조회수60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천사들과 함께                           

 

 

 

+찬미예수님

편안하셨죠? 

집안에 개들도 다 잘 지내지요?


제가 진천성당에 있을 때 80%가 노인네들이었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딜가나 실버타운 원장입니다.^^

성당에 잘 나오시던 할머니들이 몇 달 동안 보이지 않으면 대개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지요.

몸이 아파서이거나 아니면 아들이나 딸네 집으로 애 보러 갔다 오시는 경우입니다.

오랜만에 나오신 할머니들은

“신부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Me too!!!야”^^


그동안 젊어서 못 다녔으니 이제는 어디든~~

성당도  훌훌 마음껏 다니고 싶은데 자식들이

“애 좀 봐 주세요!”

젊은 것들이 돈 좀 벌겠다는데 박절하게 거절도 못하고

올라가서 손주들 봐 주면서 그 동네 지리도 잘 모르니까 본의 아니게 냉담자 몇 달 동안 하고 옵니다.

 

그러면 제가 “그것 다 필요 없어요....”

 

그래서 제가 할머니들께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까 그렇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안 보게 되실 겁니다.


1단계, 아이들 앞에서 사투리를 찐하게 써라...

“밥 무라~~”

그러나 이거 가지고 꿈쩍도 하지 않는 며느리가 있을 겁니다.

2단계, 김치 먹일 때 입으로 쭉 빨아서 먹여라!

며느리가 학을 떼죠, “아이구, 더러워라!!!”

3단계 , 애 얼굴 닦아줄 때 더러운 걸레로 닦아 줘라!

그래도 안 통하면, 적당히 떨어뜨려야 되는데~~

4단계, 아이를 며느리 보는 데서 몇 번 떨어뜨려라!

이 정도 되면 “어머니, 차라리 제가 돈 안 벌고 애 보렵니다!”

이러면서 잘 내려가시라고 차표 끊어 줄 겁니다.^^

꼭 써 잡숴!!!^^


예수님이 자기 집이 없으셨죠?

방랑선생이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날아다니는 새도 둥지가 있지만은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


여러분들은 이슬 가리고 눈 가리고 비 가릴 집이 있으시죠?

우리 스도(그리스도 줄여서)형님께서는 그런 집조차 없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하다 하여도 예수님보다는 부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머리 가릴 집조차 없으셨으니까요.


예수님은 가파르나움으로 가시면 주로 베드로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성서에 베드로의 부인에 대해서 나오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베드로의 협조자로서 독신생활을 하다가 후에 순교했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성서에는 베드로의 장모이야기가 나옵니다.

장모는 아마 그 지방에 많았던 모기가 옮긴 열병(말라리아)으로 고열에 몸을 떨며 앓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쉬러 가셨는데 호랑이굴로 가신거죠~~


오늘 복음에서 두 가지를 묵상해 봅니다.


첫째,예수님은 베푸는 사랑의 성격입니다.

둘째, 치유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이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베드로의 집에 가기 전에

회당에서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마귀를 떼어 주십니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러 가다가 12년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 가기도 전에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 쉬러 가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 해도 재충전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부님들이 안수 해 주는 것 쉬운 것 같아요?

안수가 끝나고 나면 입에서 단내가 납니다.

왜? 너무 힘이 드니까!

하루 종일 피정지도 하는 것이 쉬운 것 같습니까?

어렵죠!

저는 피정지도를 하루 7~8시간 끄떡없이 해 냅니다.

피정지도 할 때에는 무당이 작두날을 타듯이 성령에 휘둘려서 해내지만~~

돌아올 때에는 차안에서 몸이 찌그러지고 맙니다.


예수님도 사람을 치유시켜 주실 때마다 예수님의 능력이 빠져나갑니다.

오늘 매우 피곤하셨기에 쉬러 가셨는데~~

그 곳에 들어가자마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병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사제관에서 편히 쉴 것 같습니까?

못 쉽니다.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지만, 벨이 울리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오직 사제단 피정이 있을 때만 쉽니다.


사제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상관없이 두 다리 쭉 벋고

“베개 하나 내 와!”

“라면 하나만 끓여 줘! ”

그러나 그 집에 가서 좀 쉬려고 하면 쉬게 내버려 둡디까?

고민 보따리 하나 가지고 와서

“신부님, 쉬셔야하는데....” 하면서 2-3시간을 면담합니다.

또 대녀를 데리고 와서 “상담 좀 해 주세요!!!”


사제의 ‘쉼’은 생명이 끊어지고 난 후

하느님 곁에서 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잠이 드는 그 순간에도 쉬지 못하고, 신자들을 위해 잠이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성가시고 피곤해도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사제의 사간자체가 하느님과 신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의 집에 쉬러 가셨는데 그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거나 성가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고쳐주시는 그 모습을 묵상해 봅니다.


약한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봉사를 해도 많은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가 이쁜 짓하고 다니는 것, 본당신부님, 본당수녀님이 알아주길 바라지요.


그래서 대모님께 전화를 합니다.

“대모님만 알고 계셔야 해요.  신부님이 아시면 안 되요! 제가 어저께 꽃동네에 다녀 왔거든요.”

그 이야기는 대모님 나팔 빵빵 불어서 그것을 많은 사람이 알아 주고, 본당신부님 귀에 들어가길 바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많으나

이득이 되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에서는 무관심해지거나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 약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성탄절 같은 때에 보면 국회의원들이 뺏지를 달고 카메라가 비추는 순간에 봉투를 넣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무튼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있어요.


저도 피정지도 시킬 때 사람이 많으면 더 신이 나지요.

어느 본당에 피정을 해 달라고 해서 가 보면 40명 앉아 있는 데 30명은 할머니고, 그 중에 20명은 보청기를 끼고 있으면서 아무리 크게 이야기해도 하품만 쩍쩍 하고 앉아 계시면~~

이럴 땐 맥이 빠지지만~~


그러나 저는 몇 안 되는 사람을 놓고도 수 천명에게 피정을 하듯 더 열을 내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이 들지요.

우리들의 약한 본성에는 반드시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지침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쓸모없는 장소에서라도~~

네 몸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더라도~~


너에게 손을 내미는 양이 있을 때는

쓰러진 양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돌보아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오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시켜 주시면서 사제의 기본을 알려 주신겁니다.


예수님은 군중이 있는 곳이든, 오막살이든~~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든.....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

그 분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어떤 사람이든....

베풀어 주시는 원칙이 있으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성격에는 조건이 없었습니다.

사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오늘 성서에 보면 베드로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은 능력자이시기에 “일어나거라!” 고 말 한마디로 

까딱하고 손가락질만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왜?

다음 주일 복음에 보면 나병환자의 상처에 손을 대십니다.

이것은 touch 요법입니다.

곧 사랑의 표시이지요~~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아이를 끌어안는 것은 다르죠

신부 손 한 번 잡으면 일주일이 행복하잖아요?

그렇죠!


베드로의 장모는 오랫동안 앓아 누워 있었기에

외롭고 고독했을 것이며

누군가 돌보아 주지 않아

몸에서 입에서 냄새가 났을 것이며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겠지요.


예수님께서 그 귀하신 손으로

베드로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예수님께서 입으로 하지 않으시고 몸으로 끌어안으셨던 겁니다.


다른 공관복음에 보면 베드로장모는 일어나서 (곧)즉시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이 ‘곧’ 이라는 것을 대단히 강조합니다.

비록 나았다고 하더라도 즉시 시중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오랫동안 누워 앓았기에 이제 열만 내렸을 뿐이지 다리는 휘청거리고 속이 허하여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여 그 청이 이루어지면

즉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댑니다.

예수님께 치유받은 베드로의 장모가 “저 같은 인간 고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리가 후둘 거리고 기운이 없으니, 개소주도 먹고 보약도 좀 먹어서 다음에 들르시면 삼겹살 로스구이에다가 끝내 주게 모실 겁니다.”


그러지 않았지요.....


나았다 하더라도~~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응답받기 전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님, 이 어둠 걷어 가시고, 우리 집 내 남편 좀 살려 주시고, 내 새끼 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다가

기도의 응답을 받은 이후에는 많은 경우 그 애절했던 마음, 그 약속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를 여러 가지로 치유시켜 주시고자 하실까요?


구원받고 치유 받는다는 것은 봉사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께서 새로 회복시켜 주신 건강을 예수님과 이웃을 위해 쓰여지는 것입니다.

아프기 전에 세상적으로 재미가 목적이었던 삶이었지만

치유받고 난 이후에는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달라진 겁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난 베드로장모는 봉사하는 여인으로 변한 겁니다.


영국의 오스카와일드라는 극작가가 쓴 ‘주옥의 단편’ 이라는 희곡을 보면

예수님이 거리를 거닐면서 당신께서 치유시켜 주었던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에 술에 취한 젋은이을 만났는데 “저는 1년 전에 당신이 문둥병을 고쳐 주셔서 한동안 편하게 잘 살았는데 문둥병자일 때 술을 맘대로 못 먹어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술만 퍼먹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쓸쓸히 돌아서셨습니다.


길을 가다가 창녀의 뒤를 쫓아다니는 음란마귀를 만나서

“그대는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인데 누구인가!”

“저는 맹인이었는데 당신께서 진흙을 개어 제 눈을 밝게 해 주셔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이제 눈을 뜨고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여자들을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쓸쓸히 돌아 서시며

“나는 너보고 음욕의 눈을 뜨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울고 있는 늙은이에게 왜 우느냐? 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시 죽을까봐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여주는 풍자적인 희곡입이다.


베드로의 장모는 병에서 회복된 선물을 예수님과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데 쓰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때 어떻게 써야 하는 지 보여 주는 겁니다.


치유의 목적은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통해 미사 때 마다 치유를 받습니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미움과 고통과 번민과 ,어두움 속에 있었지만

미사와 사제의 강론, 성체를 통해서 서서히 얼굴이 변합니다.

 

사제의 입술을 통해

“나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천주께 감사!!!"

 

 

미사를 통한 내적치유로

성령의 칼을 차고

진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이 성당 문을 박차고 나가서


일주일 동안 말씀과 성체를 양식으로

이웃과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임을 믿고

오늘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을 겸손되이 맞이하도록 합시다. 아멘

    사랑의 치유-연중 제5주일-2006. 02. 05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春雪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음악 김웅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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