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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바라는 그대로 해 주어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5 조회수964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순 1주간 목요일 - 바라는 그대로 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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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에서는 “너희가 청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믿기만 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청하는 대로 다 들어주십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정말 재미있고 감사하게 보았습니다. 특별히 문명과 떨어져 사는 원시 ‘조에’ 부족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턱을 뚫어 뽀뚜루라는 나무를 끼고 다니고 옷을 걸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사냥해서 나누어먹습니다. 사냥을 위한 도구 정도를 제외하고는 개인소유도 없고 그래서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을 촬영했던 사람들은 문명에 접해가며 원시부족들이 점차 웃음을 잃어가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사는 것과 같은 이들의 삶은 문명이 오히려 우리의 웃음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에 부족 역사상 살인사건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총을 소지하고 있는 미국 등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와는 다르게, 이들도 활과 칼을 지니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명과 접했던 다른 부족들과는 다르게 외지인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그 곳에 다녀온 PD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아무도 누구를 해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알아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말에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무학 대사와 이성계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시험하기 위해, “당신의 모습은 꼭 돼지와 같소!”하자, 무학대사는 “임금님은 부처처럼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에 놀란 이성계에게 무학대사는 한 마디 더 보탭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두려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판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기에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험담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이, 내가 하는 대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조에족은 마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선만 알고 악을 모르기에 남들이 자신에게 악을 끼칠 줄도 모르고 그래서 두려움 없이 마냥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명을 접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는 이들도 움츠려들고 공격적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왜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 때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하느님께 그만큼 돌려드릴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기에 하느님도 그런 분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병자들에게 안수 기도를 해 주며 이들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그러면서 속에서는 “나 같은 죄인에게 하느님이 청을 들어주실 리가 없어.”라고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아버지께 청하는 모든 것을 얻어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사랑이시기에 하느님을 사랑으로 볼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의 청을 의심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느님도 당연히 그렇게 나에게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지만, 내가 남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할 사람이기에 하느님께로부터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을 주실 분임을 믿기 위해서는 우리도 남이 청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도 자비로운 분으로 보이고 그래서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청하기 전에 내가 정말 그 청을 하면서 남의 청은 들어주지 않는 인색한 사람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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