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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77)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3 조회수39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0년2월2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 허용 -이사야55,10-11; 마태오6,7-15 -
 
(477)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이순의
 
사람이 살아가는 도중에 경험하는 길은 그 구간이 분명한 것 같다. 어미의 태중에서는 그냥 어미가 생각하는 것이 아기의 생각이 되고, 어미의 마음이 아기의 마음이 되는! 그래서 태중에는 좋은 마음과 좋은 환경을 위해 서로가 배려하는 정성을 다 하는 것 같다. 세상에 나와서는 기본적인 소통 구조를 통해 젖을 달라고 하기도 하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눈을 맞춰주면 방실방실 웃으면서 의심 한 점 없는 온전한 답례를 다 하면서 제 길을 열어 간다. 그러다가 불쑥 자라서 어른이 되면 제 인생을 간다지만 부모의 품과 제 인생의 갈림길에 서면 여러 질문들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한 번 쯤은 내가 누군가의 짐이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아들도 크면서 그런 고민을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엄마, 제가 엄마의 십자가인 걸 알아요. 저 때문에 엄마 자신을 희생해버린 것 같아서 너무나 가슴이 아플 때가 있어요. 이제라도 엄마의 길을 가시면 안 되나요?>
아들의 질문에 당장 명답은 하지 못했다. 그냥 그렇지 않다고만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아들로 인해서 내가 내 자식을 십자가로 지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여러 날을 고심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나도 내 어머니께 십자가였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내 아들은 형제가 없으니 아들과 나의 관계는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어머니의 십자가였는지에 대하여는 그리 쉽게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자식이 여럿이라는 것은 아롱이다롱이 인데다가 손가락은 깨물면 열 손가락이 똑같이 아프다지만, 그 손가락의 길이와 모양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할 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있느냐를 내세우게 된다. 그 말 앞에서 고개를 들 자식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은 깨물 때만 아픈 것이지 평소에는 그 길이가 다 다르고, 그 하는 일도 다 다르며, 그 위치나 모양들도 다 다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자식이란 손가락 각자의 입장이 있지를 않겠는가? 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도 그 역할이 다 다른데 누구는 십자가가 되고 누구는 십자가를 지는 자가 된다는 것은 실로 큰 아픔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너는 누구의 십자가야." 라고 공히 인정하게 되는 분위기에서는 그 열 손가락 중에서 어찌 깨물어서 똑같이 아프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내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손가락을 깨물어서 아픈 엄마가 아니라 손가락의 끝에서 길이가 짧아 안타까운 엄마를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아들이 나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엄마의 청춘을 가슴 아파한 맥락과 같을 것인데, 이제라도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라는 뜻은 이제 본인이 다 컸다는 암시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이 하나 뿐인 나의 입장에서는 내 아들이 나의 십자가인가? 내 자식이 나의 십자가여서 나는 날개를 펴지 못했는가? 내가 아들의 엄마인데 왜 그런 말이 아들의 입에서 나와야 했는가? 아들이 엄마의 십자가가 자신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엄마인 내가 아들의 십자가가 되어있지를 않은가?! 라는 느낌은 아픔이었다. 실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무엇이 아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는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막내의 입장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어머니께는 거두어야 할 남은 자식이었고, 형제들에게는 책임질 자식은 아니나 외면할 수 없는 의무가 남는 동생! 그러니 참 본의는 아니지만 모진 말들도 간혹은 감당해야 했었던 입장이었다. 그 외로움 앞에 견딤이라는 것은 동무가 없었다. 주어지는 이끄심대로 따라 사는 방법 외에는 딱히 재주도 없었고 방편도 없었다. 더구나 천성이 순둥이였으니 악다구니를 써서 독립을 하지도 못했고, 형제들에게 어깃장을 놓아서라도 제 갈 길을 열지도 못했고,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있기를 하나, 재주풀이를 할 여력 또한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라는 대로 했었던 청년기를 보냈을 뿐이다. 어머니의 말씀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운이었고 복이었을 것이다.
 
홀로되신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도 컸었다. 어머니의 강한 의지가 대단하게 심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아니다 싶은 참들도 있었지만 그런 어머니께 의견을 낼만한 힘은 내게 더욱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너만 시집보내고 나면 죽으련다." 는 어머니의 말씀에 진짜 많이 울었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업의 몰락이 나 때문이 아닌데 어머니께서는 나 때문에 죽지 못한다는 말씀을 두고 쓰셨다. 얼마나 힘이 들면 저러실까? 얼마나 외로우시면 저러실까? 그런데 내가 어머니의 짐이 되어 어쩌지를 못하신다 하시니 그때는 가슴이 저미도록 아파서 참 많이 울었었다. 이런 어머니 모습의 마지막 목격자는 나뿐이지를 않는가?! 막내로 태어났으니 아까운 나이에 혼자되신 어머니의 가장 어려운 순간의 동무일수 밖에 없었다. 늦게까지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함께 살고, 곁에서 함께 겪으며, 어머니랑 함께 견딜수 밖에 없는 입장이 막내이지를 않는가?!
 
실제로 이 과도기의 부질없는 상황을 나만큼 자세하고 분명하고 사무치게 직접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없더라는 것을 세월이 가면서 알게 되었다. 출가를 했다는 것은 삶의 방향이 가지를 뻗어 저 만치 다른 방향의 길을 보고 있었고, 아버지의 유업을 쥔 사람은 어머니와 작은 오빠였으니 객관적 시야에서 멀어진 입장이었다. 그러니 그때 막내의 입장은 냉혹한 얼음판 위에 선 목격자가 아니겠는가?! 그 난관의 시기에 어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어머니께서 이 세상을 하직하시더라도 눈을 감게 해 드려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결국 결혼도 엄마한테 효도한다고 해버렸다. 막내가 시집을 간다는데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그놈이 어떤놈인지 글이나 읽는지 쓰는지 밥이라도 먹는지 누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어머니가 원하시니 어련히 알아서 보내실까 하여 시집을 가는 나도 보내는 가족들도 그냥 가고 그냥 보내고야 말았다.
 
내가 어머니의 십자가였을까? 
 
이런 화두를 가지고 시집을 와서도 오랫동안 악몽을 꾸었다 . 막상 시집을 오던 날에는 몰락하는 과정의 친정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몰락이라는 두 글자 앞에 선 우리 집 일꾼들도 먹지 않는 밥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집 온 새 며느리의 밥상이 콩나물 50원 어치의 성의도 없는 배추김치도 아니고 무 깍두기 종지의 밥상이었다. 그 밥상을 걷어차고 돌아가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이 그 밥상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 같아서 정말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지 않고 24년을 살았다. 죽고 싶으신 어머니께서 나 때문에 죽지를 못하신다 하시지를 않았는가?!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의 십자가가 되어 존재한다는 그 비극적인 인식이 두고두고 얼마나 약점이 되어 내 가슴을 후비는 비수가 되었던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께서 가장 힘든 여정에서 고뇌하실 때 어머니의 곁에서 순종하여 벗이 되었던 사람은 막내였다. 나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었지만 그러했기 때문에! 아무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 곁에 남을 수 있었지 않은가?! 그때는 그게 다인 줄 알고 순종하여 살았다. 그저 어머니가 불쌍하고, 안타깝고, 죄송하고........ 그러니 시집오던 날에 우리 집 머슴들도 먹지 않는 그 밥상을 걷어차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이 청년기가 되어 나의 청년기 때 했던 고민을 그대로 하고 있지를 않는가?! 내가 나의 어머니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시집와서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머니는 나보다 자식이 여럿이고, 그 자식들 중에 깨물어서 아픈 쪽으로 쏠리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다. 모든 어머니들은 손가락이 길든 짧든 잘생기든 못 생기든 온전히 손에 붙어있으면 별다른 불편함도 별다른 관심도 없이 안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관심은 깨물어서 아픈 쪽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자식이니까 궁금하고, 기다려지고, 보고 싶고 걱정되는 여러 갈래의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깨물어 아프거나 다처서 아픈 자식 곁에 줄을 서게 되어 있었다. 그 아픈 손가락 때문에 다른 손가락들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아픈 손가락 때문에 멀쩡한 손가락에게 조심하라고 밀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어머니의 십자가가 아니었다. 그 형편없는 밥상을 걷어차지 않고 살아서,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 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니 나는 더 이상 어머니의 십자가가 아니었다.
 
이런 결심을 하는 데는 많은 세월과 고통이 있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 어머니라는 어느 한 면의 일부분들을 인정하고 멀리 물러나 있을 때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런데 내 아들이 나에게 자신이 엄마의 십자가라고 말하고 있다. 너 때문에 라는 말! 어미가 자식에게 너 때문에 라는 말! 형제들이 막내에게 너 때문에 라는 말! 그 말을 얼마나 진저리치며 견디어 왔던 말인가?! 그러니 아들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다는 말은 해 보지도 않았다. 간혹 부부 싸움이 일 때면 짝꿍에게는 너 때문에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지만 자식에게 너 때문에 엄마가 라는 말은 진짜로 생각하지도 못했고, 하기도 싫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우주의 질서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냈기 때문이다. 길가의 풀 한 포기도 가뭄이 오면 뿌리가 마르는데도 씨방은 여물어 바람을 타고 나른다. 민들레꽃 한 송이를 꺾어서 물 컵에 담았더니 뿌리 없는 그 민들레도 줄기가 다 말라 죽은 후까지 씨를 가꾸어 바람을 탔다. 
 
그런 이치의 묵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그런데 내 아들이 나에게 던지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고통이 되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자식은 어미 인생의 십자가가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세상에는 누구도 누군가의 십자가가 되지 않더라는 묵상을 알려 줘야 한다. 세상에는 누군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의 십자가라는 것이다. 사람은 많은 경우들에서 어려움이나 고통을 벗으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무인도에 갇혀 살 수가 없다. 그 관계 안에 존재하는 이권의 쟁탈전일 뿐, 사람이 사람의 십자가가 되는 경우는 없다. 내 중심! 내 것! 내 집! 내 자식! 내 이익! 내 배경! 내 잘남! 내 자존심! 내 목적! 수없이 많은 "나"라는 존재 안의 환경들이 나의 십자가인 것이다. 그 중에는 삶의 존속을 위해서 지켜야 할 것도 있고, 그 중에는 삶의 존속 안에서 부득이 나에게 또는 상대에게 양면적으로 해롭거나 이익이 되는 것도 있고, 그 중에는 정말로 큰 죄가 되는 것도 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이것들을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니 그 해방의 해답도 내 마음에 달려있던 것을!
 
그런데 아들이 엄마의 십자가라니? 
 
아들이 있어서 얻었던 행복들에 대하여 많은 감사를 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알림이 부족했더라는 말인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엄마의 십자가는 없었다. 이끄심이 엄마의 십자가였다고 말한다면 알아들을까? 때 되면 사람이 의도한 길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분께서 정해주신 대로 가야 할 길! 그 길목에서 사람이 정한 여건들에 마음들이 쏠려 그 쏠리는 쪽으로 가지 못함을 한탄하는 몫이 인간의 자아에 넘실대는 것! 그것이 십자가인 것이다. 탐욕과 쾌락을 절제하고 열어주시는 길에 성심을 다한다면 그 길이 무에 그리 고단하겠는가마는 사람의 마음이 어두운지라 달관되어 깨닫지를 못하고 탐욕과 쾌락에 만족하려 하였으니 당연히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니겠는가?! 그 결과로 주님을 십자가 형틀에 메달아 놓지를 않았던가?!
 
막내 딸 때문에 눈을 감고 죽지를 못한다던 어머니는 이제 81세가 되셨다. 그 후로도 강건하게 25년을 더 사셨고 앞으로도 더 사실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의 복이거늘! 내가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서 지금의 어머니처럼 81세가 되었을 때 어머니만큼 강건한 모습으로 아들을 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때는 내가 아들에게 십자가가 될 것인지에 대하여도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갈길 아득한 막내에게 너 때문이라는 짐을 지우지 말았어야 했고, 아들도 엄마에게 나 때문에 엄마가 라는 짐스런 말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삶은 어머니 때문도 아니고, 아들 때문도 아니며, 내 스스로가 나의 몫으로 주어진 실마리를 풀어야할 십자가가 있는 것이다. 막내 때문이었다면 어머니 뜻대로 어머니 인생은 지금쯤 이 땅에 먼지도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 몫의 삶을 잘 살고 계신다. 아직도 밝은 총기로 당신이 앉아야 할 자리와 서야 할 자리를 분간해 가며 꺾임 없이 팔순에 걸 맞는 권위를 누리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를 가졌다는 것도 우리 자식들에게는 커다란 복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한없이 먼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어머니의 십자가였기 때문인가?
내 자식이 나의 십자가가 아닌데, 나는 어머니의 십자가였을까?  
 
손가락은 깨물어서 아픈 순간 보다 그 생김대로 사는 일생이 더 오래더란 말이다. 부모가 가진 이치야 세상 만물의 숙명일진데 어찌 자식이 부모의 십자가가 될 수 있더란 말인가?! 엄마가 시집가던 날에 친정집 머슴도 받지 않았을 그 밥상을 수용했을 때는 누구의 강요도 없었고, 그 순간에는 이 세상의 먼지로도 아들이 존재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다 큰 아들의 눈으로 본 안쓰러운 엄마의 모습은 십자가가 아니라 은총이었다. 그 고단한 역경을 수용했으므로 이렇게 멋진 아들의 마음도 얻지를 않았는가?!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관계들이 있고, 그 안에서 나는 누군가의 십자가를 지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의 십자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의 본거지는 그 누구도 아니다. 오직 십자가를 진 나 자신이 내 등에 업은 바로 그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지고 가는 죄가 아니겠는가?! 
 
<아드님! 엄마처럼 너무 늦게 그 십자가를 내려놓지 마시고 지금 내려놓으십시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못나서 "너 때문에" 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질없는 이기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 많이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스스로 그 십자가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참 아깝게도 고달픈 헛 세상 오래도 살았지요. 그러지 마세요. 엄마는 아드님께 "너 때문이다." 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깨달음을 구하려 애쓰지도 마십시오. 아드님은 어미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아드님 스스로도 누군가의 십자가 라는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드님의 십자가를 아드님이 질 줄 아는 길을 열어 가십시오. 설령 그것이 외로움일지라도 그리하시기 바랍니다. 그 동무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곁에 계실 것이니까요. 주님이 아니시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위로를 얻지 못할 것이니까요. 부디! 아멘> 
 
-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 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오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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