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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몸으로 하는 기도와 말로 하는 기도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3 조회수690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오 6:7-15)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말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말로 하고 있다. 옛날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작가가 한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바알(Baal)의 예언자들이 그들의 신을 끊임없이 찾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했습니다. ‘더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아마 당신의 신은 자고 있을 것이오.’
(1열왕기 18:27)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하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무시고 계신 것으로 알고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조르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성부(聖父)에게 드리는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따라서 그 기도 안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같은 신비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성부만 생각하시고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시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주 기도를 할 때는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눈을 통하여 찾고 예수님처럼 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성찬 기도의 마지막에 아버지께 고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그리고 모든 기도를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로 끝내고 있다.
통하여, 함께, 안에서라는 말은 우리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께 바치는 청원기도가 항상 확실하게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도가 항상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수없이 구하였지만 받지 못하였고,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고, 두드렸지만 문은 굳게 닫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와는 정반대를 약속하고 계시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왜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우리의 믿음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을 청했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구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들어주셨을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넘치는 부모로서 우리에 무엇이 좋은지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칼을 갖고 놀고 싶다고 보챌 때 그것을 주겠는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더 깊은 지혜를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다.
루이스(C. S. Lewis)는 우리가 영원의 상태에 이르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은 것에 감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가 왜 종종 응답되지 않는가에 대한 많은 이유들에는, 실제로는 그 어느 것도 실제 이유가 되지 않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떤 진리와 지혜가 숨어 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 근거하여 생각할 때 이런 이유들은 참된 이유가 될 수 없다. 마태오는 모든 복음사가(福音史家) 중에서도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청원기도와 구체적인 행동을 가장 깊게 연계시킨 사람이다. 마태오에게는 청원기도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연결되는 만큼만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느님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려고 하실 때에는 육화를 먼저 생각하신다. 다시 말하면 응답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능력이 이제는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든 기도를 “이것을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청합니다.”하고 끝맺는다. 이 공식은 하나의 형식 그 이상의 것으로 하느님께 기도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예식적인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이 몸은 예수님과 성체와 이 땅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몸인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몸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에게만 청원을 하며 응답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실제로 몸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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