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2 조회수1,173 추천수2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Simon Peter said in reply,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Jesus said to him in reply, “Blessed are you, Simon son of Jonah.
For flesh and blood has not revealed this to you, but my heavenly Father.
(Mt.16.15-17)
 
 
제1독서 1베드로 5,1-4
복음 마태오 16,13-19
 
 
이해의 영어 단어는 ‘Understand’ 입니다. 그런데 이 영어 단어를 잘 살펴보면 Under + Stand의 결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 있어 보는 것이 ‘이해’라는 단어라는 것이지요. 이 단어의 구조를 보면서 이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 단어의 구조대로 생각한다면 상대방 내면 깊숙이 들어가 봐야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말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해가 아닌 ‘오해’를 할 때가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이해란 나의 입장을 포기하고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들은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이해가 아닌 오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해한다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장애인 소식지에서 본 글입니다.

캠핑을 떠난 일가족이 반대편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대형버스와 정면충돌 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고로 그 가정은 두 딸을 잃었고 아내도 전신 마비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2년 3개월 간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에도 남편은 하루하루 아내를 위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를 파괴된 가정이요, 가장 불쌍한 부부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합니다.”

남편은 새벽 3~4시면 일어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아내의 누운 자리를 바꿔 주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그밖에도 그가 아내를 위해 하는 일은 너무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 없었다면 지쳐 버렸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와 같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바로 사랑 때문에 아내를 이해할 수가 있고,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는 주님에게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신 분, 그렇게 당신의 뜻과 반대로 나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분. 이렇게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 인간들을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보내고 있지만, 베드로를 당신의 넓은 사랑으로 이해해주시고 받아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교회의 반석으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베드로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해하는 사랑이 있었기에 베드로는 변화될 수 있고, 실제로 교회의 큰 기둥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이해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본받아 나의 이웃에게 오해가 아닌 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으로부터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면 어떤 것도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사소한 것도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사뮤엘 하조).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말자(오무라 아츠시, ‘인생공식’ 중에서)

내가 다니던 대학 근처에 인심 좋은 식당이 있었다. 공기 밥을 무료로 주는 것은 물론이고 밥값을 깎아 준적도 많았다. 심지어 생활이 궁핍한 고학생에게는 밥값을 받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언젠가 나는 밥을 주문하면서 “이번 달에는 제가 돈이 빠듯하네요.”라며 말을 꺼냈다. 5천 원짜리 밥 한 끼를 무료로 해결하고 싶은 속내였다. 그러나 그날 아저씨 태도는 평소와 달랐다. 아저씨는 그럼 내 수중에 있던 3천 원만이라도 내라고 했다. 나머지 2천 원은 서비스로 깎아 주겠다는 말인데도 이상하게 왠지 손해 본 기분이었다. 너무나 염치없는 이야기다.

인간은 무엇이든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동물이다. 어떤 호의라도 처음에는 기쁘게 받지만, 차차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호의를 베풀어 주지 않으면 외려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주인아저씨는 정말로 마음 좋은 사람이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식당을 운영하면서 밥값을 받지 않은 행동만큼은 지나친 친절이 아닌가 싶다.

과잉 친절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시간, 돈, 체력, 정신적인 힘이 소진된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는 마음, 필요 이상으로 좋은 사람인 척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참기 어려워 솔직한 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갑자기 주변 사람은 떠나 버린다. 그때까지 베푼 친절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갑자기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손해 보는 일이 또 있을까?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화만 내던 사람이 조금 상냥하게 대하면 원래는 따뜻한 성격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인간관계란 정말이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솔직한 자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다.
 

 
 
 
Love Prayer -  T.S.Nam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