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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22일 야곱의 우물- 마태16,13-19 묵상/다시 붙여진 이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2 조회수378 추천수3 반대(0) 신고
다시 붙여진 이름

그때에 13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 하고 물으셨다. 14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하고 물으시자, 16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18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완고한 유교 양반들을 움직여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뿌린 지 200여 년이 넘었다. 개신교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그 시절 우리에게 전해졌다. 한국의 복음은 편안한 상황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고통과 환난 속에서 만들어진 값진 열매다. 그것도 선교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자발적인 신앙인들에 의해 일군 열매다. 초기 개신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이 한국에 들어와 시작한 일은 이미 모여서 예배를 보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일이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성과 역동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존재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엄격한 질서가 있던 당시 노비라서 서럽고, 여자라서 서러웠던 밑바닥 인생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분명 해방의 빛이었다. 세상에서는 나를 차별하고 무시하지만, 복음 안에서 나는 예수님의 한 형제요 자매라는 이 말은 복음이 갖는 강력한 힘이었다. 제대로 이름을 갖지 못했던 간난이, 언년이가 김 그레이스, 이 리디아로 다시 태어났다. 다시 붙여진 이름은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고 물었다. 이제까지 사람들이 예수를 두고 한 말은 모두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다. 베드로만 이 물음에 정확하게 대답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질문은 초기 여성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바로 그 물음이었다.
양미강 목사(한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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