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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38)Re:(복음산책) 그리스도의 얼굴이 없는 교회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0 조회수369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425       작성일    2004-07-08 오후 2:11:57 
 
 
 
 

이 묵상 글은 우리들의 묵상 - 제목 (복음산책) 그리스도의 얼굴이 없는 교회는?

- 번호 7421 - 작성일 2004-07-08 오전 8:01:53 - 작성자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님의

글에 답글로 달린 이준균님의 글 - 번호 7423번에 달은 답글임을 밝혀 드립니다.

모글 (母書)을 참고한 가운데 이해를 구합니다.※

 

 

  (138)Re:(복음산책) 그리스도의 얼굴이 없는 교회는?

 

                                                                                 이순의

 

굳이 라틴 아메리카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에도 프랑스 군대와 선교사가 같이 오셔서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말았

습니다. 일제가 36년 동안 약탈한 가치에 버금가는 보물들이 한 선교사의 오판으로 인

해 열람도 허락되지 않는 이국의 프랑스 박물관에 숨어있습니다.

한양 궁궐의 유사시를 대비하여 선조들은 강화도에 수장고를 세우고  제2의 궁궐이라고

칭할 만큼 원본과 일치하는 많은 기록들이 보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대부분이 프랑스로 실려 갔고, 나머지는 그들에 의해 불탔으며, 현재 우리 국가와

종교는 그 규모조차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구교와 신교를 합하여 그리스도 인구가 절반도 넘는

숫자적 팽창을 이루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진다면 세상은 분명히 달라져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복음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분명히 인구 2인당 한 명은

천국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므로 이 땅은 지상최대의 낙원이어야 합니다.

 

제 생각은

문화란 그 사회의 역사와 정신의 집약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누구도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에 대하여 침해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는 더욱 그래서는 안 됩니다.그건 결코 진정한 복음의 선포가 될 수 없

습니다. 동시에 복음의 원형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복음은 이미 초대 교회가 그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

니다. 현대교회가 초대교회만큼 순수성과 절박성이 부족하다고 하여, 또는 근본적 인

간의 화두를 극복하지 못 한다고 하여, 복음의 원형을 달리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

각합니다.

문화를 파괴하거나, 죄악에 대한 도덕적 면피가 자행된 현실에 대하여, 그 책임이나

죄의 값은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위성자의 만행이건 평신도의 역행이건 간에, 문화와 민족에 대한 말살행위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성의 한계가 자행한 죄의 결과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오류의 죄 값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복음의

원형은 결코 변질 되어서도, 침해당해서도, 훼손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문화의 파괴나 민족 말살 행위 그리고 전쟁과 테러, 이 모든 것은 인간이 그어

놓은 빗금에 소속 된 대가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은 있으되 종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비슷한 창조설화를 가지고 유대교는 모세를 메시아로 보는 것,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는 것,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를 메시아로 보는 차이는, 이 지구의 위기를

초래 할 만큼 중대한 사상의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세 종교가 동시에

개입된 성당이 있다고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신은 있으되 종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출발지가 다르지 않을 것이며,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인

간의 종착역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오고 가고자 하는 신의 영역을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국가의 현실이 종교의 현실입니다.

지구의 현실이 종교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국가를 따라 살고, 지구 안에 존재하며, 종교의 현실을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로 구성된 한계적 인간성을 극복하는데 종교를 통해 신의 영역

을 추구할 뿐, 인간에게는 초자연적 초월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바벨탑의 신화처럼 초자연적 초월성에, 인간의 방법으로 도달 하고자 하는 본성의 얄

팍함이, 현대종교의 모순이며 착취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그 모습은 그리스도교만의

오류가 아닙니다.

인간이 속해 있는 모든 종교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문화를 파괴한 성찰의 영역은 온전한 복음 안에서 회복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쉬운 이치로 예를 든다면 자연을 훼손한 사람이 자연을 복구한다고 시행하

는 작업은 또 다른 훼손을 낳습니다. 차라리 훼손된 자연을 그대로 두고 그 자연 안에

서 해답을 얻으려고 침묵할 때 자연은 깨달음을 제공하고, 인간은 비로소 푸른 녹음

을 보게 됩니다..

 

파괴된 문화와 착취된 민족을 바라보며 신앙인으로서 분노 할 때가 있습니다.

탈레반 정권의 빈 라덴식 불교문화 파괴행위는 금세기 최악의 슬픔이었습니다.  

원자폭탄을 가져가서 프랑스를 뭉개버리고, 일본을 수장시켜 버리고,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찾아오고자 하는 분노는 저만의 의협심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의 이라크 민족의 입장은 두 말을 할 면목도 없습니다.

희생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선교대상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복음 정신을 희석시키는 타협이 될 수 없으며, 타협

이 되어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선교대상의 문화는 당연히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더욱이 복음은 어떠한 경우나 상황에서도 희석될 수 없으며, 희석 되어서도 안 된다

고 생각합니다. 즉 복음의 훼손은 인간이 돌아가야 할 본향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입

니다. 

 

복음은 진실했으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지 못 한 점에 대하여 그 해답은 역시

훼손 되지 않은 복음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무례한 답글이라면 용서를 청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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