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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기술/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안셀름 그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23 조회수578 추천수3 반대(0) 신고

 

 

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

(서문)



삶의 기술자라니, 그게 대체 누구지?


항상 밝고 명랑하게, '걱정도 팔자, 그냥 대충 살자'는

좌우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맡은 바 주어진 길을

똑바로 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삶 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문제가 되는 어떤 것도 함께 가져가야만 한다.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삶이 늘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
파울 첼란(1920~1970, 독일의 시인)의 말이다.
이 말은 위에서 언급한 삶의 기술자,

즉 태곳적부터 있어 온 '낙천가'의 좌우명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그러나 이 말이야말로 삶의 기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가장 집약적인 답변인 것이다.

"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
이것은 실질적인 기술이다.

양극을 유지한 채 균형을 이루는 기술이다.
그리고 필요 없는 짐을 버리는 것이다.

뿌리를 땅에 단단히 박고 하늘로 향하는 것이다.
이것은 옛 교부들이 이미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안토니우스 교부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회상하곤 한다.

"젊은 수도승이 자신의 의지로

하늘로 올라가고자 애쓰는 것을 보거든

 그의 발을 꽉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려라.

그런 노력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하고만 있는 이상주의자는 열정에 취해 자신을 잃어버릴 뿐이다.
그렇다고 땅에만 머물러 있으면 결코 하늘을 얻지 못한다.

그륀 신부는 이를 통틀어 '땅이 된 영성'이라 부른다.
이것이 삶의 기술에 대한 짤막한 정의다.

여기에 심리학적인 통찰이 담겨있다.
행복과 불행의 뿌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세상이 바뀌기만을 바라거나

주변 상황을 자기 식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너 자신을 인식하라.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네 안으로 나 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것, 두려워서 도망치는 것,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자신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현실은 행복을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다.

여기에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하늘에 대한, '영원한 삶'에 대한 동경은 언제나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 동경이 무엇인가에 의해 가려져서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가려진 것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만의

충실한 삶을 누릴 수 없다.

'충만한 삶'이란,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하늘나라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또 우리가 스스로의 한계를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이미' 경험하고 있는 것은,

 또한 미래에 온전하게 완성되기를 희망하는 바로 그것이다.

기대와 충족 사이의 긴장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생기를 준다.
그리고 이 긴장은 모든 동경이 충족되었을 때 한꺼번에 사라진다.

우리가 유일한 존재라고 해서 탐욕스럽게

삶에 집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나를 더욱 깨어 있게 하고 집중하여

오늘을 살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

행복과 불행 역시 영성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
영원함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분주함이 사라지고 모든 대립이 갑자기 해소되는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초월자와의 관계는 결정적이다.
그것이 나의 본디 가치를 결정하며 나에게 확신을 주는 근간이다.
우리 위의 하늘이 없으면 우리 아래의 땅도 없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땅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힘은

 '공중의 뿌리'인 가지로부터,
즉 위로의 지향성으로부터 끌어내는 나무와 비교할 수 있다.
그륀 신부는 초월을 향한 이러한 '위로 뻗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을 만나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이 힘이 바로 나의 삶을 강하고 경건하게,

유일하고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안셀름 그륀 신부가 말하는 행복의 핵심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고ego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남을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되

그 약점을 너무 곱씹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잘 견뎌내면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적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은

타인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외부의 억압에 의해 스스로를 결정짓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나'가 아닌 내 안의

 심오한 중심과 일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결국 자신과의 조화를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조화를 다시 밖으로 발산할 수 있게 된다.

우정과 사랑 안에서 깊은 관계를 추구하고

그것을 선물로 여겨야 한다.


어떤 사랑이든 그 사랑의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보아야만 한다.

수도승에게 노동과 묵상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여기서 우리는 여전히 배울 것이 있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되 거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자신과 이웃을 발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 정적을 찾아야 한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고 싶다면

'평온'의 공간이 필요하다.

 영혼이 쉬도록 해야 한다.
실패했다고 해서 절망으로 자신을 짓누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 것,

그리고 즐겨라. 살기 위해 늘 깨어 있어라.
다른 곳을 떠돌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라.

자신을 과거에 얽매지 마라.

"무거워질수록 가벼워진다."
두 가지가 함께 갈 수 있다.

버리기와 채우기, 하늘과 땅, 시간과 영원,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방법은 양쪽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과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기술이 어려운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삶의 기술은 결국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즐거움이 아닐까?


안셀름 그륀 신부는 삶의 기술의 절정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서 찾는다.
"춤을 배워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천사들이

너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은 - 시대를 초월해서 -

프리드리히 니체의 다음 말을 상기시킨다.
"좋은 것은 가볍다. 모든 신적인 것은 부드러운 발로 걷는다."

가벼움과 즐거움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 안에 머물기 -

이것이야말로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 일 것이다.


안톤 리히테나우어Anton Lichtenauer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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