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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선택의 영원성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22 조회수1,218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2주간 금요일 - 선택의 영원성

 

 

 

마릴린 먼로와 그의 친구 콜린 타운센드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둘은 모두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배우가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타운센드는 후에 종교를 갖고 결혼을 하여 평범한 사람이 되었고 먼로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후에 둘이 만났을 때, 먼로는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영화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나는 굳게 결심했지. 그래서 꿈을 이루었지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야.”

그리고는 얼마 뒤에 먼로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미국의 한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가 신문 한 장을 손에 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신문의 머리기사는 ‘미국 제 22대 대통령 클리블랜드 취임’이었습니다. 간수가 사형수에게 슬피 우는 이유를 묻자 그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합니다.

“클리블랜드와 나는 대학교 동창입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둘은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어요. 클리블랜드는 내게 속삭였어요. ‘친구여, 교회에 가보세’ 그때 나는 거절했지요. 결국 클리블랜드는 교회로, 나는 술집으로 향했어요.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확연하게 갈라놓았습니다.”

 

이런 선택에 관한 일화는 매우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선택을 하십니다. 열둘을 선택하기 전 예수님은 밤새 기도를 하십니다. 동전을 굴려 앞뒷면으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신다는 의미는 아버지의 뜻을 여쭙는다는 의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 사도들을 뽑으시는데 아버지의 뜻을 여쭈셨을까요?

이는 ‘선택의 신중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중하게 하느님 뜻에 맞게 선택한 후에는 거기에 따르는 어떠한 결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변하지 않는 영원한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성작은 예수님의 피를 담는 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가 담기기 전에는 그저 다른 잔과 같이 특별할 것 없는 것입니다. 성작을 축성하는 다른 예식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미사 때 사용하면 저절로 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안에 그리스도의 성혈이 담겨졌다면 저절로 그 잔은 이전의 잔이 아니게 됩니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셨기에 더 이상은 보통 여인이 아니게 됩니다. 성작이 그리스도의 성혈과 한 번 접함으로써 거룩한 물건이 된 것처럼, 성모님도 그리스도와 접하여 거룩하고 영원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잔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는 것처럼 또 사람도 스스로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원성을 얻기 위해서는 영원하신 분과 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역시 모든 영원함의 시작인 아버지께 접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영원하신 분과 만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 안에서 영원하신 분의 뜻에 따라 결정된 것도 영원합니다. 기도 안에서 뽑혀진 열 두 제자도 영원한 제자입니다.

그 안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가리옷 유다도 있었습니다. 무슨 잘못만 하면 잘라 버리려는 단체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유다가 당신을 팔아넘길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침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요즘 예전에 알던 청년들이 결혼을 한다고 많이들 소식을 전해옵니다. 혼인도 서로 기도하고 하느님 앞에서 서약하여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어쩌면 일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내가 맺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니 그 결합은 영원한 것입니다. 빌라도가 “한 번 썼으면 그만이다.”라고 했듯이, “한 번 결정했으면 그만입니다.”

 

젊은 청년들은 연애 경험이 많은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여러 번 바꾸었다는 말도 됩니다. 사귀다 아니면 말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들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삶의 모범이 되는 영원성을 갖는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선택을 번복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영원한 선택은 한 번 뿐이고 예수님의 삶도 단 한 번뿐인 선택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선택한 것을 어린이처럼 후회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앞으로는 기도 안에서 신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했다면 그 선택이 영원하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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