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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18) 초라한 그대의 모습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21 조회수407 추천수3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205       작성일    2004-06-09 오후 2:52:06
 
 

2004년6월9일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성 에프렘 주교 학자 기념ㅡ열왕기상18,20-39;마

태오5,17-19ㅡ

 

   (118) 초라한 그대의 모습에                             

                                            이순의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거리를 보고 있다. 도시의 여름 풍경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은

더운 열기에 인상 찡그린 사람들의 스침이다.

작은 핸드카에 빈 쇼핑백을 싣고 힘없이 걸어가는 노인이 있다.

백화점에서 대걸레를 들고 군중 사이를 옮겨 다니고 계셔야 할 어머니가 걸어가고 계

시다. 나의 눈은 일시 정지 되었으나 버스는 달리고 있다.

시집이라고 와서 살은 지난 18년의 어머니 모습이 영상으로 시사회를 하고 있다. 그러

나 지금의 저 모습은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투표 하던 날 새벽 출근길에 동사무소 앞에서 만나 모시고 투표를 할 적에도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더니, 어버이날에 작으나마 용돈도 담고 나라에서 주는 버스비도 챙겨

서 손자가 사준 카네이션 바구니랑 선물하던 때도 분명히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셨고,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들렀을 때도 군중속의 어머니 모습은 예전과 달라서 바라만 보

다가 코끝이 찡한 눈시울에 인사도 못 하고 돌아섰다.

 

시조부모님 보다 시아버님께서 먼저 세상을 등지고 가신 이유만으로도 어머니를 참으

로 불쌍히 여기며 신혼을 살았었다. 큰 아들을 의지 삼아 서울이라는 데로 어린 자식

을 끄집고 오셔서 어두운 세상을 사셨다. 당신 스스로가 그렇게 밝거나 깨이신 분

이 아니었으므로 삶의 질곡이 결코 양질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불쌍히 여

기며 살았었다. 자원봉사를 하다가 친정어머니의 강압에 못 이겨 효도삼아 해 버린 결

혼이라서 진짜로 자원봉사자처럼 살았었다. 그런데 천한 인생은 가는데 마다 천하게

마련인가 보다.

어머니의 천한 살이는 부잣집 귀여운 막내둥이의 인생도 시집오는 날로 천하게 추락

을 시키고야 말았다. 친척집에라도 가면 언제나 남는 음식은 어머니께 드시라고 가져

다주는 어른들이 싫어서 "우리 어머니 드리지 말고 이 집에서 남은 음식은 이 집 사람

들이 먹어야지 왜 우리 어머니께 드시라고 하세요? 이제는 며느리도 보았으니 어른

대접을 어른답게 해 주세요."라고, 한 판 붙고야 비로소 어머니의 처진음식 받아 드시

는 그 자리를 치워 드렸던 기억이며, 내 아들을 낳으려고 모아둔 출산비상금과 친척들

의 도움으로 서럽게 작은 시아버지를 초상 치르고 났더니, 자식새끼 다 버리고 집 나

간 작은 어머니가 무속인이 되어, 제 자식들이라고 찾아와 혼자 살아온 신세타령을 처

량하게도 말하였다. 그런데 금 목걸이에 금 팔지에 손가락마다 누른빛이 광을 내는 품

새가 아니꼬워서 어머니 회갑 때는 굳은 맘먹고 금으로 다가 치장을 해 드렸었다.

 

잔치는 동기간들 형편이 어렵다하여 하지 못 했어도 내 손으로 반찬 만들고 따수운

밥 지어서 동생들이랑 먹고 굵게 만든 금목걸이도 걸어드리고 알 박힌 반지도 끼워 드

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들에게도 홀로 되셔서 이만큼 키워주신 어머니께 뭐든지 

해드려야 한다고 가르쳤어야 하는데, 형한테 와서 거저먹고 구경하고 설거지나 거들

고 말았으니 모두가 내 탓이다.

지난겨울이 어머니의 칠순이었는데 가족끼리라도 작으나마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었

다. 그런데 워낙에 당신 복이 없으신 탓인지 그나마도 못 받으시고 말았다.

"어머니, 이번에 전체 가족사진도 한 장 찍어서 살아 계시는 모습이라도 담아서 동생

들한테도 한 장씩 마련해주고 영정사진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술꾼이면서 거리의 식객이며 불상인 신분으로 막내 시 작은 아버지께서 대한

민국 최고의 병원에 누워 수술을 해 달라고, 이사람 저사람 불러들이는 통에 어머니의

심기가 편치 않으셨던지 거절하시고야 말았다. 그냥 또 금일봉이라는 땜질이 며느리

라는 일생을 두고 여한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그 병원에 가 보지도 않았다. 너무나

잘 아는 신부님께서 원목으로 계신 이유보다도, 내가 나타나면 그 상황은 훨씬 더 복

잡하게 요구 될 것이 빤한 경험이며, 지금 나는 어떠한 형편도 허락 할 수 없는 처지이

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동생들이 여차저차 하여 나라의 힘을 빌려서 해결한 것 같았다.

냉정한 내 판단은 그런 인간에게는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 국비가 낭비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늘이 두려운 말이지만 사실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나도 자식이 컸다.

예전처럼 자식에게 부여해야 할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이제 내 처지가 절박하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자식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자식이기 보다 어머

니가 되어 있다. 술로 여생을 소비하느라고 짝꿍에게 학습의 혜택을 말살 해 버린 시

부모님의 전철을 내 자식에게 넘겨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끝없는 굴레만이 가난한 집

며느리의 산물이 되어 쥐어진 짐 보따리를 손에서 놓아버린 지 여러 해다. 이제는 나

도 더 늦기 전에 내 자식에게 도리를 해야 하는 어머니의 자리를 중요히 여기며 살아

야 한다. 정말로 서러웁게 봉사한다고 생각하며 자식의 모든 것 마저 미루고 살아버

린 세월 탓에 이미 죄 많은 어미 되어 살은 지 18년 세월이 아니던가!

어머니의 무지한 요구들도 '이제는 맏며느리의 자리를 포기한다.'고 선언 해버린 데는

방편이 서지 않으셨던 것 같다. 부잣집 딸에 배운 며느리가 해 줄 것이 무한하다고 여

기셨는지, 아니면 그 또한 너무 무지하셔서 상황판단이 되지 않아 그러 했는지는 모르

지만 나의 포기는 어떤 면으로 상당한 정리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동생들도 그렇고

친척들도 그렇고, 정말로 적응이 안 되는 집에서 신앙 하나로 버티는 나의 짐을 누가

내려놓게나 했겠는가? 쌓고, 더 쌓고, 또 쌓고, 지우고, 더 지우고, 또 지우려고만

지.......

 

신은 그 인간이 이겨 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 말이 사실

인줄 알고 그 시련을 몽땅 짊어지려고만 했었고, 그 모든 십자가의 해결사이려고만 했

었다. 그러나 지쳐버린 나 자신의 응답은 내 짐만 지려고 해야지 왜 다른 짐을 내려놓

지 않는가? 라고 묻고 있었다. 다른 가족의 짐은 각자 각자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래서 생각해 보니 다른 가족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어머니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의 신앙으로나 양심으로나 힘든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해결은 일상 안에서 벌어졌고, 그 답이 주님의 결단이라고 여기며 독한 마음

을 먹었다.

그리고 길 하나를 두고 지척에 사시는 어머니와 시댁 식구 모두를 못 오게 해 버렸다.

이혼이라도 불사할 독심을 먹고 갈라버린 선이라서 누구도 넘지 못 했다. 그러나 어머

니는 살아가는 내내 나의 가슴이었다. 그리고 내 가슴의 피멍이었다. 이제는 어머니를

모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짐은 모두에게 분산이 되어 주인을 찾아 각자에게로

넘어 갔고, 어머니 한 분 달랑 내 집에 모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방이 없다.

어머니 사시는 단칸 반 지하방을 빼서 합할 수도 없다. 어머니는 아직 장가를 들이지

못한 어머니의 자식 하나를 포기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불상인 시작은 아버지

럼 시동생까지 내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지경을 만들고 싶지가 않다. 

빈 핸드카를 끄집고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은 그저 나에게 아픈 가슴이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을 거느리지만 열 자식이 한 부모를 거들지 못 한다고 한다. 나는 어

머니를 내 가슴으로 내 손으로 거둘 것이다. 쉰세 살의 젊은 시어머니의 무지함을 배

하지 않고 참으로 불쌍히 여겨 살았던 새댁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 스스로가 그 때

어머니의 나이에 다가서며 세상을 향해 철이 들어있다.

어찌 어머니가 불쌍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내 자식을 버리고 어머니를 선택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직은 어머니께서

거처하시는 방에 또 다른 아들이 있으시니 어찌할 것인가? 또 다시 나의 무기력한 한

계를 느끼며 주님의 지휘봉이 어서 빨리 인도하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초라한 어머니의 모습이 텅 빈 핸드카 만큼 무상하다.

 

어제 뉴스에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모를 보호하지 않아서 법적인 소송을 하는 어

른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그 소송 금액이 우리네 서민의 관점으로는 좀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사회는 어려운 사람이 많다. 이혼한 가정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벌어서 사는 사람도 많고, 조기 퇴직으로 실패한 사람도 많고, 실직

자도 많다. 그런데 뉴스의 원고인 어른들은 피고인 자식들이 20만원씩 주는 용돈이 적

어서 더 많은 청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뉴스는 부양을 외면하는 천륜을 어긴 도덕

성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사는 게 어려워서 못 모시는 사람들의 기사로 가진 자

를 합리화해주는 것은 가진 것이 적어 가슴 찢어지는 사람들의 가슴을 짓이겨 놓는 기

사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는 돈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다. 골목이라도 가시고 싶은데 바람쏘여 드리고, 소찬

이라도 제 때에 드시게 해 드리고, 하시는 말씀 들어 드리고, 함께 사는 것이다.

다행히 친정어머니는 큰 오라버니와 큰 올케언니의 효성과 안정 덕으로 건강하게 잘

사시는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내 생활이 궁핍하여 나는 친정어머니를 뵙는 것도 발

길을 끊은 지 오래다. 공연히 어머니 잘 모셔주는 큰 올케언니께 누를 끼칠까 하여 조

용히 있기로 마음먹은 탓에 여염의 딸들처럼 친정어머니 생각에 가슴에 시리거나 눈

물이 나지는 않는다. 솔직히 당신이 나 보다 더 편안하신데....... 뭐!

그저 올케언니께 감사할 뿐이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오5,1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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