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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지상의 삼위일체: 그리스도-마리아-교회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7 조회수849 추천수10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 주일 - 지상의 삼위일체: 그리스도-마리아-교회

 

 

만약 어떤 사람이 옷을 잘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고 합시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어디로 가려고 하구 있구나!’는 알 수 있습니다. 이성이 있는 사람의 행동은 이처럼 다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당연히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두고 아주 좋은 곳에 가서 아주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합시다. 그 좋은 것을 즐길 때, ‘그 사람과 함께 했으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삼위일체 사랑을 인간과 나누고 싶어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완성은 ‘혼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성경에 나오듯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도 남자와 여자의 사랑으로 이루어져있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시는 남자의 역할이고 성자는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 즉 성령님을 받아 다시 감사의 마음으로 성령님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 여자의 몫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님을 통해서 한 몸을 이룹니다. 인간 남녀 간의 사랑도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인 생명을 여자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고 여자는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받는 것도 사랑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남, 녀 두 사람이 혼인을 할 때, 사제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하게 됩니다. 둘만이 서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를 통하여 하느님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만으로는 사랑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신 것처럼, 당신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남, 녀도 둘이 아닌 삼위일체를 이루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관계이고 대화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묻는다면 상대는 그것을 듣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서로 오고가야 대화가 이루어지고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공기가 서로간의 말을 이어주지 않는다면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대화가 그렇듯이 모든 관계는 이렇게, “나-너”, 또 “제3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마치 꽃이 수정되기 위해서는 그 둘을 연결해주는 벌이나 바람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는 이 “제3자”를 “성령님”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어떠한 관계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열매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시는 ‘에너지’이십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차를 운전하려해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듯이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은 누구도 온전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이란, 당신의 삼위일체 사랑을 세상에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즉, 아드님을 통해 성령님을 성모님께 드리고 성모님께서는 교회에 성령님을 나누어주시어 교회가 그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 - 성모님 (성령님) - 교회”의 지상 삼위일체가 바로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된, 천상 삼위일체, “성부-성령-성자”의 재현입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로 인간이 남녀로 창조되었고 둘은 결합하여 하나가 돼야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고 요한 묵시록 마지막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으로 끝납니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성령님으로 한 몸을 이루도록 창조되어 살아가던 부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범하고는 서로 상대의 잘못으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이 없어진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랑의 성령님께서 둘을 더 이상 하나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랑을 깨뜨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죄의 탓입니다.

이 상황이 바로 오늘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술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술은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없애주고 다시 성령님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기 때문에 결국 물과 술과 피와 성령님은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 요한 5,8 참조). 성모님은 오늘 혼인잔치에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포도주를 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성령을 달라고 청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이여, 그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엇입니까?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성모님은 이어 곧바로 일꾼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이르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얼핏 첫 기적을 행해주시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지만 성모님은 해 주시겠다는 말로 알아듣습니다. 예수님도 아무 대꾸 없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을 '여인'이라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에게 부족한 사랑을 하느님께 청해주시는 중재자로 출연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마치 성부와 성령께서 성자를 나으시듯,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여인으로서 교회를 탄생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중재자는 중매쟁이와 같습니다. 중매쟁이는 두 집안을 잘 알아야 하는데 성모님은 인간이시기도 하지만 원죄도 없으시기 때문에 하느님 집안도 잘 아시는 가장 완전하고 유일한 중매쟁이인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서 예수님은 “그 요구는 단순히 술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충만히 계심으로써 나를 잉태하게 만든 분이시고 또 나와 아버지가 하나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을 달라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어 "아직 가 이르지 않았다."는 뜻은 당신의 희생의 피를 먼저 흘려야 성령님이 오실 수 있다는 뜻인데 지금은 공생활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는 모든 행위는 “상징”, 혹은 “표징”으로 머물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께서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시며 인간의 죄를 씻어주시고 곧 이어 성령님을 상징하는 물이 같은 자리에서 솟아나온 것을 미리 내다보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계획을 잘 알고 계셨고 당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잘 아시고 또 오늘의 이 혼인잔치의 의미도 잘 아셨습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표징이 아버지의 계획을 나타내주는 것이어야 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고, 바로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해야하는 기적이 있을 수밖에 없음까지도 너무나 확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기적을 행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의 희생으로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오듯 인간에게 당신의 성령님을 주셔서 당신과 하나로 만들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 구원사업에서 성모님은 중재자, 즉 대사제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였듯이 성모님도 같은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전무후무한 겸손한 사람이었다고 나옵니다 (민수 12,3). 겸손은 교만이 없다는 뜻이고 첫 교만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원죄라고 생각하면 가장 완전한 중재자는 바로 원죄가 없으신 가장 겸손하신 성모님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포도주이고 피이고 성령님인 것을 과방장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당신이 그 성령님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직접 할 것이 아니라 바로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과방장은 지금의 교황님, 또 그것을 퍼서 나르는 사람들은 사제라고 봐도 무관할 것입니다. 어쨌든 은총은 성모님의 중재로 교회를 통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우리는 그 성령님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흥이 나지 않고 잔치가 잔치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술이 빠진 잔치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혼인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오늘 포도주로 상징되었던 성령님을 청해주시는 분은 바로 성모님이고 성모임 없이는 성자께서 사람이 되실 수 없으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 충분히 이 세상에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은총의 중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중재자이고 삼위일체에서 성령님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 창조 때부터 계획된 삼위일체의 신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인 잔치에 초대 된 사람들이고 그 혼인 잔치는 성모님을 모신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 신비가 완성되는 날이 하느님의 창조 계획이 완성되는 날이고 세상의 마지막이자 영원한 혼인잔치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제 1 독서를 되새겨봅시다. 이것이 태초부터 세상 마칠 때까지 이어질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시온 (예루살렘이고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신부를 나타냄)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 다시는 네 (교회) 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 (마리아) 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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