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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양이도 왕을 뵈올 수 있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6 조회수371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르코 2:13-17)
 
미국의 닉슨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던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두뇌가 비상하고 냉철하기로 소문났으며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때 상원의원인 헤트필더, 휴스, 퀴에 등 3명의 의원이 투옥된 찰스 콜슨을 위해 날마다 시간을 정하여 놓고 함께 기도하였고 또 자주 그를 찾아가 위로하며 성경책을 전해주었다.
그의 형 집행기간이 7개월 가량 남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퀴에 의원은 콜슨을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변호사이기도 했던 퀴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의 특수법조문을 자신에게 적용해 주도록 법원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퀴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콜슨은 감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진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기로 결심했다.
 
남은 형기 동안 그는 동료 죄수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죄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빨래 일을 자청해서 했다. 다른 죄수들은 처음에는 그러한 그를 믿지 못하고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의 참된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도 모임을 갖게 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 없던 내가 그들을 사랑하면서부터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옥에 갇혀 있을 때 평생을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형기를 마친 뒤 출옥하여 그는 『다시 태어나기(Born Again)』라는 책을 출간하여 미국사회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또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를 조직하여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한 공로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템플턴 상을 받았다.
 
콜슨은 좌절과 절망으로 인생을 끝낼 수 있었지만 “다시 태어남(born-again)” 즉 “구원”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그의 다시 태어남 뒤에는 3명의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명제는 우리에게 매 순간마다 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콜슨의 현명한 선택은 그를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하게 했다. 예수님은 “사람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구원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이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요한 3:3)
 
오늘 복음에서는 전지전능한 예수님께서 창녀들이나 세리들처럼 평판이 좋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의로운 사람과 나쁜 사람, 신자와 비 신자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고양이라도 왕을 볼 수 있다(A cat may look at a king).”는 영국 속담이 있다.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제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나셨으며 모두 친구로 삼으셨다.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Gregory Nazianzen) 주교 학자가 말했다.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은 병자를 고쳐주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의사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 뒤에 마태오로 이름 붙여진 레위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나를 따라라.”는 말씀에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발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다.
발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행동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다.
성 베다 (St. Bede the Venerable, 673-735) 사제학자가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땅의 것을 바라지 않고 사라질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속된 찬양을 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의 모든 수모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아픈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이 받은 상처를 참고 견디며,
자신을 핍박한 사람을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항상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고,
사람들이 하늘의 것을 사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마태오는 이렇게 이 땅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태오에게 겉으로는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안으로는 그가 따를 수밖에 없는 충동의 은총을 내려주셨던 것이다.
외과수술을 받을 때 몸에 끔찍한 아픔이 있듯이 병든 영혼을 회복하려면 고통이 뒤따라야 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콜로새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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