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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상방을 방문하며 선배님들께 목사님성공사례를 나눕니다.
작성자곽운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30 조회수403 추천수1 반대(0) 신고
†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교회의 장상어르신들께는, 여기서 물의를 여러번 일으킨 한 사람으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의 굿자게모습이 오늘날의 순교하는 모습인지, 분열과 갈등을 목적으로한, 자기중심적 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직분이 예언직인데, 올바른 예언직활동에도 저를 포함 의도적 방해를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눈도 별로 안좋고, 이해력의 깊이도 폭도 좁지만, 이런 사람들은 무관심이 최고의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말씀의 씨앗의 열매가 좋은 열매를 맺도록 서로 유기적으로 돕지는 못하고, 할퀴고 상처만 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려는 비정상적 가톨릭인이나 사이비외인들은 없어지도록 저도 단호히 상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싸움을 목적으로한 대쉬는 함께 참여해드릴 생각이, 소모전일지언정 조금은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들은 전혀 듣지는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큰 소리로 떠들기만 하고, 게다가 동조세력도 많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에 온전한 모습으로 참여하려는 자세, 화합하는 장이 될 수 있는,
한 개신교목사의 인간적인 성공사례를 나누고자 감히 펜을 들었습니다.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분을 아시겠지만요,
어느 마을에 실제로 문목사라는 사람이 개척교회를 시작할 당시였습니다.
열심히 개척하여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교하여 다 교회에 나오는데, 딱 한 가구만 무관심이였습니다.
 
문목사는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
술주정에 온갖 불만투성이의 아저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아저씨의 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말이다, 14후퇴때, 죽을 고생을 했고, 625때,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평생의 고생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
<내가 온전했다면 목사보다는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고, 목사정도는 내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3시간쯤 되었습니다.
<이 정도는 내 인생의 서론에 불과하니, 필요없는 당신은 내 앞에서 꺼지라는 것>
문목사는 인사를 하고 돌아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갑니다. 인사를 드리고, 아저씨의 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말이다, 14후퇴때, 죽을 고생을 했고, 625때,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평생의 고생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
<내가 온전했다면 목사보다는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고, 목사정도는 내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3시간쯤 되었습니다.
<이 정도는 내 인생의 서론에 불과하니, 필요없는 당신은 내 앞에서 꺼지라는 것>
문목사는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갑니다. 인사를 드리고, 아저씨의 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몇번...
어느날 아저씨는 다시 연설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날은 한 대목이 추가가 됩니다.
<나는 말이다, 14후퇴때, 죽을 고생을 했고, 625때,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평생의 고생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
<내가 온전했다면 목사보다는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았고, 목사정도는 내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래도 문목사는 더 참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이야기 하고 또 합니다. 5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나는 말이다, 14후퇴때, 죽을 고생을 했고, 625때,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평생의 고생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
<근데 목사양만 난 당신같은 사람 처음이예요. 내 얘기 들어준 사람이 별로 없는데, 당신은 다 들어줬어요.>
<당신같은 사람 처음 봅니다>
더 이상 아저씨는 할 말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고통, 모든 한을 문목사가 몽땅 다 들어주어, 아저씨는 모든 독을 다 내뱉게 되어, 평화를 찾았습니다.
 
주일예배날이 되었는데, 그 아저씨가 식구들을 몽땅 데리고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모든이가 그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위 이야기는 살아있는 실화입니다.
 
막연히 '이해하다'보다는...
문목사는 understand를 설명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understand입니다.
상대보다  낮은 자세(under)에 (stand)(서다≒견디다) 견디는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볼 사례가 아닐까해서 올려 봅니다. 
 
거룩한 연말 연시를 맞이하여, 아니 오늘 이 순간,
굿자게를 떠나신 분들께도 평화를 빌며, 남아계신 분들께도 경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오늘을 주신 분께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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