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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복음과 묵상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6 조회수66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0년 1월 16일 토요일[(녹)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견원지간’은 개와 원숭이 사이라는 말입니다. 좋지 않은 관계일 때 이 비유를 사용합니다. 실제로 개와 원숭이는 잘 지내지 못합니다. 동물 학자들이 원인을 밝혔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원숭이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리는데, 개는 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면 원숭이는 꼬리를 올리고, 개는 내린다는 겁니다. 신호 체계가 반대인 셈입니다.
자신의 신호 체계로 상대를 보니까 오해는 당연합니다.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숭이와 개 사이의 불화는 ‘숙명’인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시각坍 바꾸면’ 견원지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가능합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던 것’을 상대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이지요.
바리사이들은 항의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시각疸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시각疸로 보십니다. 세리도 주님의 자녀라는 관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눈길’을 지녀야 주님을 닮은 삶이 됩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신호 체계를 승화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며 살면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행복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모두 함께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누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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