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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경을 다루는 지혜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5 조회수429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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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역경을 다루는 지혜


역경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역경은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찾아온다. 우리를 두렵게 하려고 찾아온다. 역경은 우리 삶 속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킨다. 역경은 우리의 꿈을 좌절시키고, 우리의 길을 막는다. 역경은 우리의 마음을 낙담케 하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역경을 잘못 다루거나 어리석게 반응하면 엄청난 손실을 경험케 된다. 그러나 역경을 잘만 다루면 역경이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이 된다. 역경을 잘 극복하게 되면 역경을 통해 더욱 성숙하게 된다.

역경을 잘 다루는 길은 역경을 친구로 삼는 것이다. 역경을 적으로 대하면 역경이 우리를 심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역경을 친구로 삼으면 우리에게 찾아와 좋은 것을 내어 놓는다. 역경은 검은 보자기에 싸인 축복과 같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어두워 보인다. 그렇지만 검은 보자기를 열어보면 그 안에 보화를 담고 있다. 잔 귀용은 “나는 어두움을 좋아하도록 배웠다. 이는 처해있는 환경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주님의 얼굴은 더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역경을 잘 다루는 길은 역경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역경은 훌륭한 스승이다. 훌륭한 스승은 지혜를 가르쳐 주고, 고난을 통해 비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역경을 보내시는 것은 훌륭한 스승처럼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역경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된다. 역경을 통해 우리 안에 담아 두신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역경을 통해 온유한 사람이 된다. 역경을 통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된다.

역경을 잘 다루는 길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논은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은 역경마저도 지치게 한다”고 말했다. 지칠 줄 모르는 사랑만큼 강한 에너지는 없다. 열정을 가지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 역경은 당황한다. 역경은 낙담한다. 그러므로 역경을 두려워 말고 역경을 친구 삼으라. 역경을 스승으로 모시도록 하라. 열정과 사랑으로 역경마저도 지치게 하라.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당신은 역경보다 강한 존재임을 기억하라.

(강준민님)




[1월 16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마르 2,13-17>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의 묵상]
‘견원지간’은 개와 원숭이 사이라는 말입니다. 좋지 않은 관계일 때 이 비유를 사용합니다. 실제로 개와 원숭이는 잘 지내지 못합니다. 동물 학자들이 원인을 밝혔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원숭이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리는데, 개는 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면 원숭이는 꼬리를 올리고, 개는 내린다는 겁니다. 신호 체계가 반대인 셈입니다.
자신의 신호 체계로 상대를 보니까 오해는 당연합니다.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숭이와 개 사이의 불화는 ‘숙명’인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시각을 바꾸면’ 견원지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가능합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던 것’을 상대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이지요.

바리사이들은 항의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시각으로 보십니다. 세리도 주님의 자녀라는 관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눈길’을 지녀야 주님을 닮은 삶이 됩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신호 체계를 승화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며 살면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행복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모두 함께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누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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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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