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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14) 그곳에는 이제야 철쭉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3 조회수345 추천수3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141       작성일    2004-05-29 오전 10:36:09
 
 

 

   (114) 그곳에는 이제야 철쭉이

                                                이순의

 

 

대관령에는 이제야 철쭉이 만발했다.

끓여 놓은 곰국을 절반도 먹지 못하고 지방을 간 짝꿍은 돌아오지 않았다.

작업준비가 완료된 물품들을 싣고 바로 산으로 가 버린 것이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먹을 찬도 없는데.

산으로 간다는 작별은 하고 떠날 줄 알았는데.

 

하루 동안 남의 집에서 하는 김장만큼의 김치를 담그고.

수박도 사고, 참외도 사고, 우거지도 데쳐서 송송 썰어 봉지 봉지 만들고.

봄부터 가을까지 입을 옷가지들을 라면박스로 한가득 포개고.

혹시 짬이 나면 미사에라도 다녀오려나 싶은 바람으로

몇 장의 와이셔츠는 다림질하여 따로 담고.

작년에 산에서 신었던 흰 고무신도 새하얗게 수세미질을 하여 씻어 담고.

산에 갔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면 씨앗을 넣어야 한다고

찬 설 내리는 한겨울에도 입에 담고 종알거리더니

고속도로변 곳곳에 하얀 아카시아 꽃이 출렁이고 있다.

분명히 씨앗을 넣었을 거라는 만족을 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굽이굽이 골을 따라 고지에는 터가 있다.

싸늘한 추위가 저 아랫사람의 건방진 옷매무새를 야단치고 있다.

그 곳에는 아직 아카시아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봄의 전령인 철쭉이 이제야 오셔서 늦은 길을 재촉하고 있다.

그새 까맣게 타버린 사람의 하얀 이가 보석처럼 빛났다.

 

겨우내 봄을 준비하러 틈틈이 산으로 갔다가 온 사람의 흔적으로 그 터는 말하고 있다.

길가에 볏짚이 왕릉처럼 쌓여있고.

저 볏짚을!

몇 차나 되는 저 볏짚을 혼자서 쌓고 돌아와

그 고생스런 피로를 어쩌지 못하고 나이 탓을 하며 잠만 자더니.

저 볏짚 때문에

바람이 불면,

비가 오면,

산으로 가던데.

그 볏짚들이 겨울동안 찬바람이랑 얼마나 씨름한 흔적을 안고!

비닐로 덮여있고,

검정색 포장으로 덮여있고,

또 비닐로 덮여있고,

얽이 설기 연결된 줄들과 매달린 돌덩이들이

농군의 졸인 마음만큼 복잡하다.

 

그랬구나!

혼자서 봄을 준비하느라고 짝꿍은 외로이 산속을 다니며 서러웠겠구나!

그랬구나!

고적한 산속에서 살아볼 욕심에 짝꿍은 서러울 여력도 없이 부지런한 마음이었겠구나!

 

수 만평이나 되는 터에 잘 정리된 도랑은 폭우가 오셔도 끄떡없게 대비한 흔적이

또 짝꿍의 노력이구나!

그랬구나! 그랬어! 그랬었구나!

살아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초록이 짙은 산 속에서 돌 틈 사이사이 피어있는 철쭉은 왜 저리도 선명할까?!

왜 저리도 곱기만 할까?!

모두는 하늘이 주신 복이 있어 저리도 좋다.

 

하늘이 주신 복이 있어 산에 가서 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온다.

그렇게 고생하는 그 사람이 짐을 가지고 산에까지 왔다고 각시를 아까워한다.

바보 같은 사람아!

산에서 일하는 당신이 더 아깝지 어떻게 물품 가져다주러 잠깐 들린 각시가 더 아깝냐?

서로 아까워하는 이렇게 큰 복이 하늘이 주신 복이라서 좋은가 보다.

세상이라는 돌 틈에서 행복이라는 철쭉을 피우고 사나보다.

 

ㅡ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요한21,25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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