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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것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3 조회수434 추천수4 반대(0) 신고

 

 

 

 


복음: 마르 1, 29-39 
 

예수님께서 가파르나움에서 행하신 활동들을 집약해서 모아 놓은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고정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매양 다르다.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실 때의 모습은 준엄하셨다.
그러나 시몬의 장모를 치유시켜 주시는 모습은 더없이 자애로우시다.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악령을 쫓을 때, 말씀의 위력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 
시몬의 장모도 한마디 말씀으로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 

딸이 인천에 있는 선배 언니의 약국에서 잠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가 오셨단다.
마침 처방전에 기록되어 있는 약이 떨어져서 
다른 약으로 대체해야 할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본인이 원래 쓰던 약을 가져가길 고집하셨기 때문에
다른 약국으로 가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에겐 꽤 먼 거리였다.

딸은 할머니가 너무 연로하신데다가 급히 쓰실 약도 아니라서
약국에 다시 오시게 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가져다 드리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퇴근 전에는 주문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며 댁의 위치를 일러주셨다.
퇴근후 할머니 집을 찾아갔지만, 가르쳐주신 위치가 불분명해서
몇번이나 동네를 헤매는 우여곡절 끝에 
대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여름이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생을 한 딸에게
할머니는 음료수나 한잔 하고 가라고 굳이 잡아끄셔서 집으로 들어갔다.
음료수를 마시며 집안을 둘러보았더니
마루 옆 탁자에 가족들 사진이 거꾸로 돌려져 있었다.
사진을 돌려놓으며 '가족이세요?"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거꾸로 돌려놨다며 멋적어 하셨다.
알고보니 아흔의 연세에 홀로 사시는 독거 노인이셨다.

할머니는 온 김에 봐달라고 하시며 장 속에서 약봉지들을 주섬주섬 꺼내와서 
아픈 부위를 내 보여주시며 이것저것 물으셨다.
딸은 설명을 하는 김에 할머니를 눕게 하고 여기 저기 안마를 해드렸다.
할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집을 나오는데
할머니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시며 연신 손을 놓을 줄 모르셨다.

왠지 할머니가 안 되어 보여서 골목을 나오는데 눈물이 흐르더라면서
복약 지도를 하러 갔다가, 졸지에 복지사로 변했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웃었다.

그 할머니는 딸이 그 약국에 근무할 때는 심심하면 찾아오시고
그곳을 그만두었는데도 올 때마다 딸을 계속 찾으신다고 한다. 

그렇다.
노인과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손을 잡아 주는 것, 가까이 다가가 대화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백약(百藥)보다 효험있는 치료라는 것을. 

................................

예수님께서도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다."
그러자 노인의 열이 단번에 떨어진 것은 물론,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열이 내린 것이 끝이 아니고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는 것이 끝이다.

실상 예수님께서 먼저 부인의 시중을 들었고 
부인도 예수님처럼 시중을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인이 잠시 몸을 움직여 손님 대접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중을 받던 삶'에서 '시중을 드는 삶'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말한다. 
'나'중심의 삶에서 '타인'중심의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예수님께 치유받은 이의 삶은 봉사적인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뒤이어 예수님께서는 해가 지고 날이 저물도록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돌보아 주셨다.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늘 이처럼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외딴곳으로 가시자 기도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하여 일부러 외딴곳으로 나가신 것이다. 

날이 저물도록 일하고도 피곤한 몸을 일으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시간과 장소를 찾아나서는 모습은 
기도를 하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쉼없는 활동의 힘은 쉼없는 기도에서 나왔던 것이다. 
아니, 예수님의 진정한 쉼은 오로지 기도 안에서
아버지의 따듯한 품 속에 계실 때였던 것이다.

"모두들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좋은 일 한다고 찾고, 능력이 있다고 찾고, 따듯하다고 찾고, 
아는 게 많다고 찾고, 멋있다고 찾고, 인간적이라고 찾고....
그렇게 당신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아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이 신날 터인데도 
바로 그것이 당신의 할 일일텐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놓아 둔 채 발길을 돌리신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당신을 찾고 의지하고 소유하려는 그들의 기대를 단호히 거절하시는 예수님.
그분의 사명은 당신의 보람, 기쁨,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를 이 세상에 두루 구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세상에 파견하신 하느님의 목적에 위배되는 어떠한 것도 
단호히 배격하시는 그분의 엄격함이 드러나는 말씀이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중심이 없이 모든 이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요구에 좌지우지 떠밀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확고히 잡고 있는 사람의 시간은 한치의 허술함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2006, 1.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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