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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13) 그것이 옳았을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2 조회수393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7135       작성일    2004-05-28 오후 3:27:08
 
 

 

  (113) 그것이 옳았을까?

                                이순의

                 

ㅡ신뢰와 고집ㅡ

소년은 결심했다.

"나는 절대로 내 자식이 보는 앞에서 취하지 않을 것이며, 취한 정신으로 아들을 체벌

하지 않을 것이고,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라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 거

듭했다. 자식의 팔을 앞으로 들게 하여 목침을 올려놓고 또 술독에 빠져 정신을 놓아

버린 아버지의 중지명령을 기다려야하는 고통을 느낄 때마다 결심을 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장터에 쓰러진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듣는 날에는 빈 수레를 끌고

재를 넘어 갈 때도 결심을 했고, 고주망태가 되신 아버지를 태우고 재를 넘어 올 때도

또 결심을 했다.

술병이 들어서 죽을란다고 죽을란다고 몇 날 몇 시에 죽을란다고 하실 때도,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도 멀었는데, 어린 손자가 젊은 아비의 관 뚜껑에 못질 하는

순간에도 어른이 되면 내 아들에게는 절대로 이런 꼴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 다짐을

했었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 진짜로 그렇게 살았다.

자식이 보는데서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았고, 아까운 자식에게는 아픔을 느낄만한 체벌

도 하지 않았고, 가진 형편 안에서는 최고의 행복을 보장해 주려고 안간힘을 아끼지

않은 아빠가 되었다.

그런 아빠가 된 소년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아들을 살폈고, 먹을 것을 배불리 먹여 주

었고, 아비의 품에서 아비의 냄새가 좋다고 느낄 만큼 아들에게 잘 하는 아비라고 생

각했었다. 죽은 아버지의 술이라는 존재가 어린 가장에게 모든 짐을 지워버린 무겁고

폭폭한 인생살이였기에 더욱 자신의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아비로서의 도리

였는지도 모른다. 술만 버리면 세상의 모든 짐은 가벼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온 소년이었다. 세상의 어떤 굴레에서도 힘들다하거나 좌절하

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소년도 목이 메고 소리 없는 눈물이 나는 시기를

맞았다. 관 속에 누운 죽은 아비의 시절을 그대로 사는 아비인 것이었다.

아들의 진로에 어떠한 상담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세상은 술만 포기하면 되는 세상이 아니었듯이 자식을 기르는 것 또한 술만 안마시면

아비노릇을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들이 진로를 고민 할 때가 되어 있는데 아비

는 아들에게 문과가 뭔지 이과가 뭔지를 물어보아야 하는 사사로움에 봉착하고 말았

다. 그러니 구체적인 상담의 깊이에서 아비가 지녀줘야 할 기본의 좌절을 체감하고 있

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하루 이틀에 알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고, 진로를

고민 해 보고, 원하든 원하지 않던 인생의 목표점을 향해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하고

추구해 본 결과에서 우러나오는 사고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급급한 삶을 사느라고 주어진 현실에만 얽매어 살아버린 소년에게

진로는 사치로움 이었고, 딱히 지니고 있을만한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그것을 고민

할 여건은 당초부터 가져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생각하는 깊이에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엄마랑 상의해서 고민해라. 아빠는 항상 엄마를 믿었다."

그러나 아들은 지금껏 모든 일상뿐만 아니라 사상까지도 엄마로부터 지배받고 있다

고 생각하므로 엄마라는 상대와의 상담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딸을 키워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실제로 아들은 자라면서 딸과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남자라는 야성이 성장을 하면서 엄마라는 섬세함으로 다독일 수는 있다지만

그 거친 기질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의 입장은 너무

도 사랑하는 아빠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빠에게서 외로움을 느끼는 눈치가 역력

하다. 그걸 누구보다 먼저 체감하는 사람은 아빠이고, 그 쓸쓸함과 고독감의 슬픔

한 고스란히 아빠의 몫이다.

 

부부는 이렇다.

엄마는 결혼생활동안 아빠보다 높아지는 모든 상황을 차단해 왔다. 밤에 일하는 직업

의 남편을 둔 사람으로서 밤에는 절대로 외출을 삼가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빠보다 못 사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온정의 손길을 조건 없이 쏟았으나 아빠

보다 잘 사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했으며, 아빠보다 더 배운 사람에게

는 결코 굽히려 하지 않았지만 아빠보다 못 배운 사람에게는 그 무지를 수용하고야 마

는 어떤 절명한 사명감 같은 정신으로 선을 분명히 그으며 살아왔다.

주변에서 보았을 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잘난척하는 여인의 뒤에는 폭군이

되어버린 남편이 있었고, 또 폭군 남편의 결과는 가정파탄의 주체로 전락하는 경우를

간혹 보았었다.

엄마가 엄마를 버리고 아빠의 위치로 세상의 모든 관점을 전락시키는 데는 세상이 어

떻든지 가정을 파탄내고 싶지 않았고, 아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안겨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의 마음에 장애가 되는 모든 사사로운 접근을 엄마 스스로가 차단

하지 않았다면 지켜지지 못 했을 성가정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불행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들이 장성하여 더 큰 무엇을 필요로 하는데 더 큰 무엇을 살아보지 못한 아

빠의 한계에 대하여 가슴이 아릴뿐이다.

각설이의 아들은 깡통을 잘 두드리고 소리를 잘 하여서 밥을 많이 얻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듯이, 가방 끈이 짧은 아빠가 아들에게 이 사회가 요구하는 만큼의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다는 것은 슬픔이다.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극복하느라고 세월이 갔다.

그러나 자식이 아빠를 극복하느라고 졸아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자식은 아빠의 인생을 극복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아빠의 인생은 엄마가 동반한 극복

으로도 충분하다. 자식은 부모를 밟고 뛰어넘어 자식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 자식이

지금 그 나들목에서 이정표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갈

레의 길을 어느 한 가닥도 모르고 있으니....... 빈 이정표에 새겨 줄 글씨가 없다.

술만 원망했던 어린 소년 아빠는 술이 아니면 자식의 이정표가 되어 줄줄 알았는데 어

른이 되어 어느 길도 아는 게 없으니....... 술도 안 마시고 길도 모르는 아빠를 원망하는

아들이 될까봐 겁이 난다.

이제야 가난에 절은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에 정신을 팔아 요절하신 관 속의 아버지

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아빠가 되었다. 그래도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과연 그것이 옳았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높아지려고 가지려고 혈안일 때 나는 나의 모든 가치기준을 낮추느

라고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은 고집이 과연 옳았을까?

세상에 눈을 돌리고 가진 것에 대한 추구로 속세의 이치에 더 밝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한 무엇이 보장 되었을까?

남편의 신뢰에 양심조차 티끌을 용납 할 수 없었던 아집에 대하여 과연 그것이 옳았

을까?

그리고 아들은 그것이 옳았다고 생각해 줄까?

교회 안에서 조차 <국가의 현실이 곧 종교의 현실이다>는 빈익빈 부익부에 맞서 침

묵 하나로 억지하다시피 살아온 그 방식이 과연 옳았을까?

그 수녀님과 그 신부님과 좀 더 잘 지냈더라면 지금 부유물이 되어 떠오르는 아들의

갈등들을 덜어줄 수 있었을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개 숙이지 않았던 모든 상황들이 과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였을까?

신은 또 말이 없다. 그러나 답은 있다.

기다림!

 

"이봐요! 당신은 진짜 아빠였고 충분히 훌륭한 아빠예요. 아들도 그 사실을 무척 사랑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나머지는 주님의 몫이에요. 주님의 영역을 나약한 당신이

넘보는 것은 아빠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아빠라고 해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어요. 기다립시다. 열심히 성호를 긋는 당신의 단순한 그 기도에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다립시다. 당신!"

 

ㅡ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

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21,1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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