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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10 조회수1,045 추천수1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주님 세례 축일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시보사 사장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최월갑이란 사형수는 살인강도죄를 짓고 사형선고를 받은 젊은 사형수였습니다. 그는 개신교 신자였는데 천주교로 개종하고 싶다고 해서 추기경님이 (물론 그 때는 추기경님이 아니셨지만) 미사도 드려주고 수녀님께 부탁하여 교리도 받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기 직전에 사형대에 서야 했습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은 그에게 급하게 조건부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는 매우 평화로웠고 오히려 밝은 햇살을 맞으러 나갈 추기경님이 울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는 천주교 묘지에 묻히게 해 달라는 유언과 함께 사형대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잠시 후 ‘쿵’하는 소리가 났고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간수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추기경님 옆에 있던 소장에게 뛰어왔습니다.

“소장님, 월갑이, 월갑이가...”

“왜 그래. 무슨 일인가?”

“월갑이가 저 밑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어요.”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야. 죽은 사람이 웃고 있다니?”

추기경님과 소장이 현장에 가 보니 그는 정말로 밧줄을 목에 걸고 편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나무로 된 낡은 교수대가 그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아래로 함께 떨어진 것입니다.

소장은 즉시 ‘사형집행 계속’ 명령을 내렸습니다. 추기경님은 두 번씩이나 교수대에 서야하는 상황이 애처로워 어쩔 줄 몰라 그의 손만 꼭 잡고 있었습니다. 간수들이 사형대를 고치는 것을 태연스레 보고 있던 그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전 괜찮습니다. 지금 죽는 것이 제게는 가장 복된 죽음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믿음이 있으면 제 말을 이해하실 거예요.”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제가 반시간쯤 후면 천당에 가 있겠네요.”라며 추기경님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편안하게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 함께 못 박힌 한 사형수는 예수님께 자비를 빌었고, 한 사형수는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한 사형수는 죽기 직전 예수님을 믿었기에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고, 한 사형수는 믿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믿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버려야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죽이는 우리의 작업을 의미하고 ‘회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징표’입니다. 예수님께도 성령님이 내려오시면서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세례는 이렇게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즉, 세례를 받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시며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한 수녀님께 세례에 대해 말씀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수녀원에 들어와서 못난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해 주심을 느꼈어요.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이것이 세례 같아요.”

그렇습니다. 세례는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로 태어남입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났다는 증거는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를 느꼈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에 또 한 번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한 사제에게도 세례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고해성사를 볼 때 세례를 다시 받는 것 같아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새로 태어남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고해하는 작업은 홍해를 건너는 일과 같습니다. 나쁜 것들을 바다에 남겨놓고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용서해주시고 새로 태어나게 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면 그것도 역시 작은 세례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저도 신학교 들어갔을 때 교만하여 주님께서 불러주신 것에 대해 만족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정도를 굶고 나서 성체를 영하는데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틀을 굶어보니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저를 불러주신 것에 대해 한 없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세례 같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성령님을 보내주시며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 바로 세례를 받은 예수님임을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례의 표징은 결국, “하느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이 확신은 죽음도 즐겁게 맞이하게 합니다.

 

성자께서는 태초부터 아버지께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받으시고 다시 돌려드리는 ‘사랑의 선물’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세례의 의미는 성자께서 태초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해서 받으실 수 있게 되었느냐에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세례의 상징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즉, 죄의 종살이를 끊고 하느님나라를 향하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더라도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십년 동안이나 사막에서 고생해야 했던 것은 우리도 세례를 받는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랜 사막의 나날을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사막 생활이란 바로 세례 이전의 자신을 죽이는 작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도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듯이, 세례는 자신을 버리는 작업을 통해서 나중에서야 ‘완성’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새로 태어난 이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의미는, 꾸준히 자신을 비워나가는 작업을 하여 자신을 온전히 버렸을 때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조차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지 못하여 그냥 말만 하면 되었을 것을 지팡이로 바위를 두드립니다. 그 덕에 바위에서 물은 나왔지만 정작 본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완전한 믿음은 자신을 완전히 버렸을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 의심을 품어 물속으로 빠진 것과 같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보여주신 모델은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지상에서 성모님이 유일합니다. 성모님의 온전히 자신을 버린 마음만이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신 하느님을 잉태하실 만큼 컸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요르단강 세례를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서 완성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을 세례가 따로 있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당신 세례의 완성이 실제로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당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완성됨을 잘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당신께 순종하여 목숨을 바치는 아들이 사랑스러워 다시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이렇게 세례는 죽음과 부활의 줄임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듯이, 우리 자신도 주님의 뜻에 자신을 버리고 순종하지 못하면 성령님도, 또 하느님의 사랑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세례는 결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버림의 연속작업이 시작되는 긴 여정의 시작점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내 자신을 물속에 빠뜨려 죽였을 때, 새로운 성령님과 새로운 사랑의 표징을 보내주십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신다는 확신 안에서만 하느님 자녀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 옛 자신을 버리고 새 자녀로 태어나는 회개의 연속이 있어야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도 외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세례가 완성되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워집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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