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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6 조회수527 추천수2 반대(0) 신고








 

 

    루가 2, 41-51 /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많이 사용한 단어는 "찾다"라는 동사이다. 그런데 매번 상황이 달랐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잃어버린 예수님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해서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 여기 저기 찾아 헤매는 모습이다. 세 번째는 찾아 헤매다가 사을 만에 잃어버렸던 예수님를 찾고 기쁨과 감탄해하는 모습이다. 네 번째는 잃어버렸던 예수님를 찾은 후에 그 예수님과의 대화하는 장면이고, 다섯 번째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잃어버렸던 하느님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잃었던 하느님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그 단계적인 영성생활의 단계를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성 생활을 하는 것은 잃어버렸던 하느님을 찾아 나서고 찾았으면 그분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것이다. "무엇을 찾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취하는 행동이다.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이는 부모를 찾아 나서고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자식을 찾아 나선다. 엄마 찾아 삼만리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까지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통스럽다. 아우구스띠노도 "하느님을 찾기 전에는 내 마음이 늘 불안했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불행은 하느님을 잃어버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은 하느님을 찾아 헤매 고 있다. 잃어버린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마치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 나서는 어린이와 같다. 어떻게 보면 오늘 복음에서 잃어버린 예수를 찾아 나서는 모습은 하느님을 잃어버린 인간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느님을 잃어버린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는지를 예수님의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 다. "라는 표현에서 그 고통을 알 수 있다. "잃어버린 하느님을 애타게 찾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시편 작가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 62, 2) 인간의 이 방황은 그리고 이런 인간의 불안은 하느님을 찾았을 때에 비로 서 끝나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황을 끝내고 마침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영혼의 모습을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주여, 잘난 체 하는 마음 내게 없사옵고, 눈만 높은 이 몸도 아니오이다.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아니하고, 내게 겨운 일들은 하지도 않나이다. 차라리 이 마음은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미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 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 이스라엘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라."(시편 130) 그렇다면 하느님이 인간을 떠났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 느님을 잃어버린 것인가? 우리는 다음의 말씀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어 머니가 "애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대답하셨다. 결국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신은 늘 있 어야 할 곳인 아버지의 집에 계셨다. 예수님을 두고 떠난 것은 그의 부모님들이셨지 예수님이 부모님을 떠난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이 하느님을 떠났지 하느님이 인간을 떠난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알라보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걸을 때도 누울 때도 환히 아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앞뒤로 이 몸을 감싸 주시며, 내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시나이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 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 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시편 138, 1-8 참조)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인간이 하느님을 떠났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다시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하룻길을 지난 다음에서야 예수님이 안 계신 줄을 알고 찾아 나섰듯이 하느님을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서는 것이 영적 여정이다. 우리는 이 영적 여정을 걸으면서 잃어버렸던 하느님을 다시 찾아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았으면 그 때부터 우리의 영적인 생활은 한결 자유롭고 평화로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하더라도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다니면서 늘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비록 다 알아듣지 못한다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하느님의 말 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풍요로울 것이다. 그래서 시인 괴테는 "사색하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행동 은, 탐구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탐구하고, 탐구할 수 없는 것을 조용히 우러러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말씀을 다 못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 하면 마음속에 품은 말씀이 조금씩, 조금씩 깨달음을 줄 것이며 그 말씀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마음속에 품은 그 말씀은 영원히 샘솟는 물처럼 솟아올라 올 것이다. 아마도 성모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사셨기 때문에 가능 했으리라. 즉 말씀을 늘 간직하고 생활하신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성모님의 성심이 되었을 것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 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 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라고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당신에게 오라고 초대하신다. 우리가 어떻게 잃어버렸던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고 있다. 이제는 예수님에게서 잃어버렸던 하느님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잃어버렸던 하느님을 발견해야 한다. 그 하느님을 발견하기 전에는 늘 우리는 불안하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을 보면 대략 5가지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삶의 기쁨도 의미도 없는 체 살아가는 사람이다. 둘째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찾아 나서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 아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있다.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을 구도 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찾아 나서고, 권력 찾아 나서고, 쾌락을 찾아 나선다. 셋째는 하느님을 찾아 나섰지만 아직까지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어머 니가 잃어버린 예수를 찾아 헤매듯이 하느님을 찾고 있는 사람이다. 네 번째는 하느님을 찾아낸 사람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기쁨에 넘친 삶을 살아가는 사람 다. 다섯 번째는 하느님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고요와 침묵 중에 말씀을 되새김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다른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지내며 하느님의 에게만 전력투구하는 사람이다. 마음에는 늘 기쁨이 솟아나고 마음이 평화로우며 언제 어디에서나 하느 님의 현존 속에 사는 사람이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 습니까?"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더 이상 하느님을 찾지 않고 늘 아버지의 집에 머무는 사람이다. 이 세상 모든 곳이 아버지의 집이요,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디에나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생활이 이미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리라. 이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우리의 영적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어느 지점에 까지 와 있는가? 강론 :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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