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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6 조회수413 추천수3 반대(0) 신고
 
 

신앙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 윤경재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7-20)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망설이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외교인이 곤란한 질문을 할 때면 그래도 외교인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겠지만, 같은 성당 교우가 난감하고 어려운 처지에 당해서 신앙 문제로 상담해오면 무어라 응해야 할런지 고민하게 됩니다.

올해 8월에 새로 영세 받은 40대 중년 남성을 대자로 둔 교우와 신앙문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첫 대자라서 관심을 두고 몇 번 식사도 함께하고 접촉하였지만, 워낙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라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는데 성탄을 맞아 안부 전화를 넣었다가 뜻밖의 고민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대자가 요즘 직장에서 자리 문제로 고민이 컸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는데 막상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이 결론이 나자 신앙생활에 회의가 오더라는 것입니다. ‘~하지 않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더니 오히려 매번 그런 쪽으로 일이 되어가더랍니다. 

엔지니어라 십여 년간 개발부에서 일했는데, 회사 사정상 영업직으로 발령이 났다든지 어느 상사 밑에서 근무하지만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막상 바로 그 상사 부하직원으로 되었답니다. 공연히 기도해서 동티가 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는 낙담한 목소리를 들었답니다.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어서 주일미사에도 빠지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렸지만, 무어라 딱히 충고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한번 만나서 이야기 나누자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대부로서 어떻게 대자에게 충고할 것이며 신앙생활에 모범을 보일 것이냐는 문제가 오늘 아침 미사 후 대화의 주제이었습니다. 

여럿이서 돌아가며 대부로서 체험과 그런 기도에 대한 문제를 나누었습니다. 흔히 멋모르고 대부를 서서 처음 몇 번은 연락하고 지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얼굴도 잊어버리고 지금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관심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한때 대자 대녀의 수를 무슨 훈장 숫자쯤으로 자랑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신앙 문제는 한마디로 대답하기에는 어려운 의외의 걸림돌이 돌출합니다. 이때 최선의 해결책은 우리 스스로 기도로서 생활하며 대자녀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겠죠. 

이럴 때 대자 대부모가 함께 만나 먼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노라 인정하고, 솔직하게 고민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신앙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자이며 교육자인 파커 팔머는 ‘That Your Life Speak’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소명이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

소명이란 내 욕망을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미 내게 주신 바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주신 바 생애가 있고, 주신 바 지혜가 있고, 주신 바 물질이 있고, 주신 바 건강이 있습니다. 그 속에 이미 소명이 있다는 말씀이죠. 그 소명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은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하고 말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본연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며,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문제는 ‘나는 누구의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냐?’하는 문제는 나 스스로 선택할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의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가만히 생각하면, 내 마음대로 태어났습니까?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었습니까?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어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손길이 있었고 그분의 능력이 있었고 그분께서 내게 행하신 경륜과 시나리오가 따로 있었어요. 내 주인이신 분께서 자신을 이렇게 저렇게 인도해서 오늘에 이르게 하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누구의 것이냐? 누구의 손에 붙들려 여기에 왔느냐?”라고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아침 미사 후 대화’는 마침 오늘 복음 말씀과 그 주제가 맞아떨어졌습니다.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대로 대답하라는 말씀은 박해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우리 안에서 이끄시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가운데 용서와 화해의 목소리를 들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자신의 욕심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라 성령의 목소리는 새로운 길을 열어 줍니다. 평화와 화해의 지혜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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