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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6 조회수1,870 추천수1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

 


 

 

오늘 어떤 어린이가 “왜 성인들은 일찍 돌아가셨어?”라고 어머니께 묻자, 어머니는 지혜롭게,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니까 먼저 데려가시는 거야.”하고 일러주셨습니다. 아이는 사랑하면 더 살게 해 주어야지 왜 먼저 데려가느냐고 “그건 불공평하다.”라고 되풀이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이가 지금 우리의 처지가 왔다가 돌아가는 순례자의 처지임을 잘 알지 못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고통이라면 저 세상은 완전한 행복의 완성입니다. 따라서 의인들에겐 이 세상의 죽음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에서의 새로운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루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여성 인권주의자가 이 글을 읽으면 왜 여자의 의무만을 강조하는지, 혹은 왜 아내가 남편을 섬겨야 하는지 강한 반감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한 여자의 자신을 죽이는 순종은 남편의 사랑을 부르게 됩니다. 남자는 교만하여 자신만 아는 여인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게 됩니다. 곧 생명은 자신을 버리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삼위일체로 한 몸을 이루심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고,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께 순종하여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느님 안에서도 순종과 질서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도 질서가 없다면 하나로 일치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아들을 세상에 주심은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아들의 탄생은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포기하여 죽음으로 내어 몰아버리는 하나의 죽음과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주시는 것은 하나의 순교이고 십자가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아드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껜 죽음을 의미하지만 우리에겐 생명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그 분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아들을 선물하셨다면 우리도 우리의 죽음으로 아버지께 우리의 생명을 되돌려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오늘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첫 순교자의 축일이 바로 그리스도의 탄생 바로 다음 날인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순교란 바로 사랑을 위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주신 것도 하나의 순교이고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생명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도 하나의 순교입니다. 따라서 순교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스테파노는 자신의 죽음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었고 이웃에게도 축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순교란 우리가 참 사랑을 위해서 꼭 실천해야 하는 희생이고 자기 비움입니다.

 

루카복음 2장 51절에도 “예수는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종은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종의 순교입니다.

성자는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즉,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시고 당신 모든 것을 그에게 주십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기 때문에 아버지와 같아집니다.

탈무드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성자께서 아버지께 왕처럼 순종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성자께 당신과 똑 같은 지위에 있도록 관을 씌워주시는 것입니다. 그 관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자가 아버지께 순종함으로써 결국 아버지와 같아지고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아내도 남편에게 순종함으로써 남편과 한 몸을 이룹니다. 순종하는 것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뜻이고 그 사랑으로 서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질서를 무시하고 아내가 스스로 남편과 같아지거나 위에 서려고 할 때 둘은 정말 둘로 갈라져 싸우게 되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남편은 하느님 앞에서 아내는 남편 앞에서 자신을 죽이는 순종의 모습을 드러내야 자신도 살고 상대도 살리게 됩니다.

 

일치와 사랑은 자신을 죽여 상대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하는 모습이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과 나와의 사이에서건, 부부의 사이에서건,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건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스테파노 성인의 죽음은 서로 같은 것입니다. 탄생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바로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의 피를 통해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진통의 고통 없이 아기를 탄생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서 이 세상 안에서 사시도록 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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