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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기 예수와 구유, 그리고 교회> - 박기호 신부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6 조회수370 추천수2 반대(0) 신고
[삶의창] 아기 예수와 구유, 그리고 교회 / 박기호
 
 
 
한겨레  
 
 
» 박기호 신부
 
 
성탄을 맞이하여 독자 여러분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린다. 유난히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던 한해도 저물고 있다. 경인년 새해에는 가족들에게도 건강과 화평이 충만하고 도모하는 모든 일에서 맹호의 기상처럼 신명나기를 기원한다.

예수 오심을 맞이하는 뜻으로 한달 전부터 마당에 걸어놓은 등이 깊은 산촌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아준다. 한겨울이지만 거두어둔 잡곡과 작물들을 가공하여 포장하고 콩을 삶고 메주를 띄우는 일로 분주하다. 아이들도 성탄에 발표할 연극과 노래 연습을 하고 장식을 하느라고 하루해가 짧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이들 성극이란 늘상 베들레헴, 마리아, 요셉, 여관집 주인, 예수 등 단골 등장인물에다 커튼을 둘러쓴 소품들이나 모두 뻔하지만 함께 경축하고 즐거워하는 자리는 웃음이 가득하다. 성탄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들은 자신이 수호천사가 되어준 다른 가족의 이름을 밝히고 작은 선물을 전한다.

성탄 전야에 사제는 아기 예수를 구유에 안치하는 의식을 갖는다. 베들레헴 마구간 현장을 축소판으로 만든 구유는 보기도 재미있고 고풍스러운 민속 분위기와 장식 불빛이 예쁘다. 그러나 인형으로 된 아기를 안아 구유에 놓는 순간 표현하기 힘든 전율을 느낀다. 신생아를 마구간 구유에 놓는 행위가 마치 세상의 위선과 기만의 죄를 대표하는 행동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사회적 상황의 표징이다. 구세주라는 전제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농가의 헛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도 아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방문객이 넘치는 시기여서 여관들이 만원이라 방을 얻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삭의 산모가 당장의 산기에 골목을 헤매는데도 몸을 풀 방 한 칸도 내주지 않는 이기(利己)의 사회를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다. 누구나 그런 세상은 싫을 것이다. 뭔가 개벽이 요구된다. 당대 사람들이 메시아를 고대했던 이유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마호메트 같은 종교 창시자의 탄생은 설령 신화라 말할지라도 신도들에게는 물론 온 인류의 기쁨이다. 탄생을 경축한다는 것은 자기 삶이 진리의 길로 가는 데 이정표가 되어준 인연과 가르침에 감사하는 일이고, 나아가 자기 종교에 대한 세상 안에서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각성하는 일이다.

성탄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구세주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지 출생력부터 묵상할 과제를 부여받는다. 마구간이라는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리에서 태어났음을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빈자였고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말한 적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다.’ 제자들을 파견하면서도 지팡이조차 들고 가지 말라고 하였다. 철저한 무소유와 자발적 가난의 모습만이 가장 제자다운 삶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성탄이다.

권력, 명예, 소유. 이는 예수에게는 물론 그를 추종하는 집단에도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다. 정치권력과 결합되고 스스로 권력이 되기를 원하지 말라. 자신의 정체를 특권층 반열에 두면 재물에 눈이 멀게 되고 부자의 종교를 합리화시킨다. 호화스런 부잣집 안방으로 성탄 배경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보혁과 빈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갈라진 현실에서 교회가 서야 할 위치는 자명하다. 가난한 예수의 마구간이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교는 대단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 정부 들어 교회를 걱정하는 지성들의 목소리가 깊어간다.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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