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죽음을 이겨내게 해 준 노래 한 곡> - 김정식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7 조회수574 추천수2 반대(0) 신고
 
죽음을 이겨내게 해 준 노래 한 곡
[회복과 쇄신(Aggiornamento)]
 
2010년 01월 04일 (월) 01:37:11 김정식 kimrogerio@hanmail.net
 

 

 

  유경환 시 /  김정식 곡 / 김정식 노래 「바람속의 주」

 

 

 

 

 

 

 

   
▲일출 - 사진 고태환 

 

1962년에 시작되어 1965년에 폐막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구원에 관한 입장이 쇄신되었다.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기존의 구원관(구원의 절대성)을 포기하고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구원의 보편성’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쇄신을 이루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 노력이 있었지만 칼 라너가 주창한  ‘초월신학’이 큰 역할을 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역사적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적 진리를 해설하는 스콜라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학적 입장에서 인간중심의 통찰을 통해 신학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의 시선. 이 놀랍도록 새로운 시선 때문에 구원에 관한 쇄신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 쇄신된 구원론에 의하면 구원의 문은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있어서 누구든지 원하면 받을 수 있다. 이른바 하느님께서는 선별구원이 아닌 전체구원을 원하신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은 초월적이어서 구원은 인간의 선택의지나 삶의 태도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주어진 구원을 기쁘게 누리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삶이나 신앙으로 잘 펼쳐내면 된다.


이토록 하느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무한하게 무상으로 사랑하시기에,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누리면서, 그 사랑의 힘으로 하느님을 살아내는 일에 더 마음을 써야한다. 하느님은 완전하셔서 우리가 사랑해드리지 않아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억지로 찬양하거나 높여드리지 않아도 홀로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랑이 하느님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기독신자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현상은 집착을 넘어서서 신드롬에 가깝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언젠가 미국의 한 방송사에서 진행되는 신앙에 관한 토크쇼를 본 적이 있다. ‘하느님을 왜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여러 대답이 나왔다. 그중에 가장 나를 사로잡았던 대답은 이것이다.

“그분은 나를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분 때문에 내 삶이 바뀌었습니다,”

자신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느님께서 그런 기적 같은 일을 이루어주셨기에 그토록 사랑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내게도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내 삶을 바꾸어준 사람은 헤르만 헤세다. 열세 살 때 만난 그의 작품을 통해 문학과 예술에 담긴 삶의 영성에 눈을 떴고, 그 영성을 통해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아차렸다. 그 후로 내 삶은 놀랍도록 달라졌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에 그 영성을 담아내었으며, 이 작업은 늘 내 삶을 바꾸어주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그 사람의 삶을 바꾸거나 때로 죽음을 바꾸어주기도 했다.

 

 

 

 

 

 

 

 

 

 

 

 

 

 

   
▲사진 고태환 
이십년쯤 전, 그 해 가을도 유난히 더웠다. 자주 있지 않은 버스 시간을 확인하지 못한 탓에, 등에 기타를 메고 진땀을 흘리면서 1시간 반을 걸어 교도소에 닿았다. 희귀난치병인 베체트로 혈관염이 자주 와 곪아있던 엄지발톱에서는 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결국 발톱이 빠졌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그 날은 면회가 안 되는 날이라고 해서 맥이 빠졌지만, 친구 집에 가 하루를 자고 다음 날 면회를 하게 되었다. 그냥 내 얼굴이 보고 싶어서 편지를 했다는 수용자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고, 영치금 약간과 음식을 넣어주고는 돌아왔었다.

그리고 5~6 년쯤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만기 출소하게 되었는데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날, 모범수로 살다가 광복절 특사로 감형 받아 나온 또 다른 수용자(그가 청하여 의형제가 된)도 나를 찾아온다고 했었다. 경사인지 악재가 겹친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지만,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당시 우리 집엔 팔순이신 할머니와 홀아버지, 우리 가족 다섯과 남동생 둘, 이렇게 4대가 좁은 집에 모여 살고 있었기에, 더운 여름날의 불편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초청일정으로 지방에 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녀석들 가고나면 연락해 줘. 내가 집에 있으면 갈 생각을 안 할 것 같아.”

“갈 데도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당신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면 안 돼. 어딘가 갈 곳이 정해지면 가지 말라고 잡아도 스스로 갈 거니까 걱정 말고 들어와요.”


두어 달 후, 건축하는 동네 형에게 부탁하여 일도 배울 겸 현장으로 가게 되었지만, 우리 가족이 겪어낸 고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삼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에게 ‘어려운 이웃이니 잘 대해줘야 한다.’고 잘난 척 했더라면, 아마 아내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출소 후에 들려준 그의 얘기는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 낼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개가를 하셨고, 큰집이나 고모네 집으로 옮겨 다니며 크다가 스무 살 무렵에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주범도 공범도 아닌 하범으로 억울하게 15년 형을 받았다. (주범은 직접 살인에 가담한 사람이고, 공범은 직접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도운 사람이며, 하범은 직접 살인도 하지 않았으며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망을 본다거나 심부름을 한 사람) 삼청교육대 일로 유명한 5공이 증거도 절차도 법적근거도 무시한 채, 사회악을 뿌리 뽑는다고 마구잡이로 진행한 군사재판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 없는 오랜 수용자 생활에 지쳐 죽고 싶었던(정말 그는 혀를 깨물어 죽으려고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성가공연을 통해 내 노래 한 곡을 들었다. 그 순간 엄청난 위로를 느꼈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후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마다 화장실에 가서 크게 이 노래를 부르면 그날의 위로와 희망이 다시 솟아났다. 그 힘으로 수용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기에 출소하여 떠오른 얼굴이 당연히 나라고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면 보따리까지 챙겨주어야 한다.

 

 

그 옷차림 스친 곳에 스며있는 향기를

그 발자욱 패인 곳에 굳어있는 믿음을

바람 부는 돌밭 속에서 가득 안은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헤매이지 않으리.

바람속의 내 주여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 뵈온 이 기쁨

내 이전 다시 외로웁지 않으리.

바람속의 내 주여.

(유경환 시 / 김정식 곡 「바람 속의 주」)

 

 

   
▲사진 고태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우리신학연구소>의 연구위원이며, 가톨릭뉴스<지금여기>의 편집위원이다.  
      

 

 

 

 

 

인문학과 예술을 통한 삶의 치유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가히 기적과도 같다. 또한 이런 기적은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하느님께로부터 얼마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아차릴 때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인간학적 입장에서 인간중심의 통찰을 통해 신학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의 놀랍도록 소중한 시선」의 참된 가치가 여기에 있다. 45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이룬 쇄신을 새해에도 보다 많은 이웃들이 알아차려서, 스스로의 가슴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수많은 기적을 이루어내길 소망해본다.      

이 한 곡의 노래가 죽음을 이겨내게 해 주었고, 그래서 삶이 바뀌었다는 수용자의 체험은 상황과 동기가 다를 뿐, 오래전에 내가 체험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내안에 내재된 영성을 일깨워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 주었고, 그렇게 바뀐 내 삶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들이 나오게 되었으니, 내게 있어 참삶의 통로는 헤세의 문학작품이다. 그런 내 노래를 통해 위로 받고 삶이 바뀌었거나 때로 죽음이 바뀐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헤세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또한 나와 내 삶을 바꾸어준 헤세에게 존경과 사랑을 드리고 싶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