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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려워하지마라는 완전한 사랑...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7 조회수69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0 1 6일 수요일 강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6,45-52
[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예수님.

 

제가 오늘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님께 뭐라고 했죠?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이것을 주관식으로 바꾸면 뭐가 될까요?

오늘 제1독서 묵상 하셨으면 답이 나옵니다.

 

완전한 사랑을 하여라!”

 

요한 제1서에 보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을 없애라!

 

이것은 완전한 사랑을 하여라.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된다.

두려워하는 이는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다.

완전한 사랑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었다는 말씀은

생물학적인 힘이 아니라, 과학을 넘어선다…… 그 말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렇게 접근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게 된 계기가 요한 1 4장의 말씀입니다.

처음에 접근하는 것이 조금 이상했어요.

묵상을 하면서 어색해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관상이나 묵상에 들어가는 하느님의 초대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네가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니, 나도 너에게 이렇게 해주어야지…’

 

양태

똑같은 모양으로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안 하시고,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라는 사랑의 법칙이 나옵니다.

 

이상하다……

무슨 얘기인가..

 

그렇게 나오는 말이……

하느님 본 사람이 없다..  하느님이 나한테 해준 것은 있지만, 하느님을 너는 봤냐……”

 

이것은 현대를 살면서……  특히 공현주간 맞이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고.. 보려고 하는데,

과연 하느님을 보려고 하는가…… 애써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과 하느님과의 구별선..

 

십자가의 성령 안에 보면, 어두움의 공방 나오죠. 광야의 체험……

그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의 단막과의 구별성, 진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성모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라는 말씀을 인류를 대표해서 받아드리셨는데, 그것은 완전한 사랑.

또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은 서로 사랑하기 위한 성자의 강생이기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고통의 순간과 원망의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심을 선포하셨을 때

이미 성탄과 더불어서 그런 준비가 완전한 사랑으로서 정립되어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나오는 것이..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다.

본다는 것은 이미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존재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존재는 머무르는 존재 입니다. 그것도 내 안에 머무른다……

 

잉태라는 것은 두 인격존재가 가장 공간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사랑의 일치성 안에서

완전히 거리감 없는 존재로서 시작된 것이지요.

 

막연히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는 성령론에서 육신의 반대로서의 영이 아니라,

완전한 일치의 영으로서의 모든 것을 육신과 정신을 포함할 수 있는 통합론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이미 요한 1서에 저자는 미사성제. , 예수님께서 성사……

육화의 신비를 통해서 드러내시는 당신의 천상 잔치인 미사를 똑 같은 양태로서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써 성령과 하나되는……

보는 것 이상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존재 안에서 그분과의 일치성을 드러내는 것인가

확실하게 해설해주고 있기 때문에, 요한 1서 오늘의 말씀은 전례력으로나

성령론 마리아의 성자 잉태에 관한 신앙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영성은 어떻게 발전되는가….

고백이 먼저입니다. 고백은 조건이 없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고백과 감사가 먼저 나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시는 성령의 힘이시죠..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성령과 머무름과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럴 때 완전한 사랑을 이룬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그런 의미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것은 인생살이에서 용기 내어라라는 말과는 다른 말이다……

 

오늘 복음에 보면………

~ 사랑이 많으세요~~ 5천명을 배불리 먹인 뒤에 보스로서 정리정돈은 제자들 시켜야 되는데,

오히려 제자들 아끼셔서 너희는 가서 좀 쉬고, 기도해~ 내가 정리할께~”

먼저 재촉해서 당신께서 군중을 돌려보내십니다. 대단한~ 완전한 사랑이죠.

 

두 번째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셨지요.

두려워하지 마라이것만 묵상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자는 아무것도 원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탄 배는 노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성모님이 보면, 우리 인류를 대표한 노아의 방주가 아닌가……

모든 인류의 희망이 아닌가……

 

우리도 각자의 인생을 갑니다.

저는 허윤석입니다……

여러분들 한 명씩 이름이 있고 부모님도 다 다른데~

여러분들이 탄 배에는 나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된다……

 

또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 영성체 하는 존재로서 용서하고 잘해줘야 된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잘해주려고 신부가 됐고,

여러분도 남에게 잘해주려고 수도자 됐기 때문에 우리는 참~ 완전한 사람이다.

우리가 언제 완전하게 될지~ 성녀가 될지~ 이런 개념 갖지 말고,

오늘 하루 애써서 두려움 이기고, 자기 나약성 이기고 열심히 살 때!

하느님께서 우리 배에 머무르신다.

 

그러나 그분이 그렇게 바다까지 걸어서 오실지 몰랐다.

우리는 그분께서 어떻게 오시는 것까지는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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