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위대한 침묵>을 보고 나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5 조회수581 추천수4 반대(0) 신고
동생 수녀님과 아내와 함께 어렵게 표를 구해 감상했다. 보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와 자막이 별로 없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말뜻을 알기 어려운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사다리는 당신의 영혼 속에 숨어 있습니다.
죄에서 도망쳐 당신 자신 속으로 뛰어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영혼 속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구합니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Anyone who does not give up all he has cannot be my disciple).”
 
주님의 깊은 뜻을 찾지 못한다면 계속 살아갈 이유가 없네.”
 
주님께서 나를 이끄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
(O Lord, you have seduced me, and I was seduced).”
 
“내가 바로 그분이다(I am who I am, 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14)).”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은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1열왕 19:11-13)
 
마지막으로 맹인 노(老) 수사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길게 자란 눈썹만으로도 나이를 쉬 짐작할 수 있었으며, 그의 피부는 소년처럼 부드럽고 그의 표정은 아기처럼 천진난만했다. 믿고 따르는 것에 평생을 헌신한 자의 얼굴은 그토록 경이로운 것이어서, 매일 거울을 보지만 일그러진 표정만 보는 우리에게 작은 미소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모든 인간은 죽게 마련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이며 하느님 가까이 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다. 하느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행복하게 되므로 더 빨리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다(Why be afraid of death? It is the fate of all humans. The closer one brings oneself to God, the happier one is. It is the end of our lives. The closer one brings oneself to God, the happier one is, the faster one hurries to meet Him. One should have no fear of death. On the contrary! For us, it is a great joy to find a Father once again).”
 
“나는 맹인이 된 것을 감사 드린다. 하느님께서 나의 영혼을 선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나를 눈멀게 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I often thank God that He let me be blinded. I am sure that He let this happen for the good of my soul).”
 
인간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있지만, 하느님께는 과거가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는 항상 우리들의 전(全) 인생을 생각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말할 수 없이 선한 분이시므로 항상 우리들의 행복을 바라신다.
따라서 어떤 일이 생기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The past, the present, these are human. In God there is no past. Solely the present prevails. And when God sees us, He always sees our entire life. And because He is an infinitely good being, He eternally seeks our well-being. Therefore there is no cause for worry in any of the things which happen to us).”
 
롤하이저 신부님이 쓴 <수도원 생활과 같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보면 알프스 산에 있는 수도원의 수사가 아니라도 우리는 매일 수도원 생활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David Steindl-Rast)는
여가는 시간이 있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은총이라고 말했다.
 
특히 오늘날 같이 어디서나 시간제약을 받고 사는 사회에서는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항상 시간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
모두 압박감 속에서 살고 무의미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으며
재미 있는 일만 있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마치 그곳밖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것처럼 공장을 쉬지 않고 돌려야 한다.
 
또 우리들은 병적으로 바쁘다는 것을 의식한다.
인생은 덧없이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알고 생계를 꾸리고
가족과 공동체에 의무를 다하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 사는 것처럼 살지를 못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시간이 없고, 서둘지 않을 때가 없고,
계획되지 않은 시간이 없는 것 같고, 여가가 없는 것 같고,
꽃 향기를 맡을 시간도 없는 것 같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러한 처지를 커피를 마시면서 한탄하지만 아무것도 효과적으로 바꿀 수가 없다.
 
우리들의 삶에 무슨 결정적인 잘못이 있는가?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가?
살다 보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고,
기도할 시간도 거의 없고, 축하할 시간도 없고, 쉴 시간도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잘못 이해하여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부유한 사람이나, 일 없이 놀고 있는 사람만이
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스타인들 라스트가 제대로 정의하고 있다.
시간은 선물이다.
엘리어트가 “시간, 그러나 우리들의 시간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살면서 시간에 초연해져야 하고
수도원과 같은 생활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수도원 생활은 종소리로 시작되고 끝난다.
수사(修士)들과 수녀들은 시간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종이 울리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간에
그들을 필요로 하는 다음 장소로 옮겨야 한다.
베네딕토 성인(St. Benedict)이 말했다.
수사는 종이 울리면 아무 말 없이 펜을 내려 놓아야 한다.”
수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먹을 시간, 기도할 시간, 일할 시간, 공부할 시간, 잠잘 시간이기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
수사들의 규칙적인 생활은 그들이 시계를 보거나 자명종 시계의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라
종소리로 그들에게 시간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며
어떤 일을 할 시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수사들은 잠자고 싶다고 잠자고 먹고 싶다고 먹고 기도하고 싶다고 기도하지 않으며,
일하고 싶다고 일하고 쉬고 싶다고 쉬지 않으며 그 일을 할 시간이 되어야만 그렇게 한다.
 
우리들의 일상생활도 놀랄 정도로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를 깨닫게 되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수도원 생활과 다름이 없다.
활동적인 나이 동안에는 시간 면에서는 수도원과 같이
“종소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살아야 한다.
일상생활에는 수도원의 종소리 역할을 하는 “종소리”에 해당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명종 시계와 생활지침이 종소리에 해당된다.
즉 이른 아침 식사, 출근(점심으로 샌드위치를 갖고),
집에서 어린이 보는 일,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과 집에서 요구하는 것,
어린이를 학원에 보내는 일, 어린이를 실어 나르고 어린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
가사(家事), 요리, 세탁, 쓰레기 버리기, 배관공을 부르는 일, 주일에 교회에 가는 일에는
종소리와 같은 규범이 있게 마련이다.
수사들이 자고 일어나고 먹고 기도하고 일하는 것 같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되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는 일상의 규칙적인 삶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삶이 그러하다.
학교에 가고, 경력을 쌓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애들 때문에 꼼짝하지도 못하게 되고,
주택 융자금을 갚아야 하고, 차량 할부금을 내야 하고,
가족과 직장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앞에서 열거한 일들을 끝내고 나서나 끝내기 전에
어린이와 함께 놀아주고, 은퇴 후에야 여가를 즐기는 것이다.
 
일을 할 동안에는 그러한 일들을 해야 할 시간이나 날짜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수사들이 수도원에서 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틀에 박힌 생활을 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꽃의 향기를 맡아야 하는 것도 아니며
위와 같은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수도원 생활도 나름대로의 정신적인 부담을 준다.
일을 해야 하고, 의무를 다 해야 하고, 일찍 일어나야 하고, 자유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어린이를 책임지고 부채와 융자금 상환에도 책임을 져야 하며,
하루 종일 일 한 후에 지쳐서 잠자리에 들게 되는 것은 우리들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자유 시간이 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철이 들어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즉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시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수도원의 종소리는 우리들이 의무를 알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일을 알 수 있게,
꽃 향기를 맡아도 되는 시간, 매 순간이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항상 지쳐있어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역으로 시간이 많은 사람은 꽃의 향기를 언제든지 맡을 수 있지만
꽃 향기를 잘 맡지 못한다.
수사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수도원의 종소리와 같은 가르침이 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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