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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인가? 기적인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5 조회수578 추천수3 반대(0) 신고


 

 

 


말씀 : 마르 6,34-44

파견 나갔던 제자들이 돌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쉬게 하려고 외딴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러나 군중들은 어느새 지름길로 달려와 그분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허기진' 그들에게 여러모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참된 가르침을 줄 영적 목자가 없는
백성들의 처지를 측은히 여기셨다는 것이 첫번째이다.

말씀을 배불리 먹이다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도 꽤 지나가고 있었다. 
제자들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와서 청을 넣는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뚱맞게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아니, 여태까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을 붙잡고 계셨던 분이 누군데
어째서 우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시는가?’하고 제자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

. 그. 러. 나.

.

.
결말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제자들이 가지고 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것이 광주리 열두개를 가득 채웠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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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김수환 추기경님 장례 미사에서 모 신부님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좀 시끄러웠던 일이 생각난다.

 

신부님은 그 자리에 모인 오천명의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온 것들을 
자발적으로 내 놓아서 생긴 기적이었다고 강론하셨다.
그러니 일평생 헌신의 삶을 살고도, 마지막으로 시신까지 기증하신 김 추기경님을 본받아,

우리도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자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전 국민(대다수가 비신앙인)이 시청하고 있는 장례 미사의 강론에서,

복음의 숨겨진 뜻을 길게 해설하거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홍보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지 아니하셨기에,

복음의 내용 중에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무리하지 않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이해했다.

(물론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있을 줄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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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가 주일학교 대표로 있을 때 만난 어떤 교사가,

예전에 이 부분을 강론하다가 신부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하며

내 생각을 물었던 일이 있었다.

 

그 교사가 강론한 내용은,

김 추기경님 장례 미사 강론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신부님께서 부르시더니 ' 당신 마음대로 성경을 바꾸냐?’고 불같이 화를 내셨다 한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그처럼 합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행동으로 변질시킨다면,

예수님의 신성, 신적인 능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근심에서 나온 꾸지람이셨던 것 같다.

 

그 교사는 디다케(교리교사들이 애용하는 지침서)의 글을 인용한 것뿐이라며 

몹시 억울해하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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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이 기적을 두고, 사실은 '나눔'이었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비록 '나눔'에 촛점을 둔다고 해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더 있다. 


기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주님이시다 !


제자들이 작은 것을 내어 기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이 그것을 받아서 축복하시고 떼어 주시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음을 잊어선 안된다.

결국 그말이 그말이 아닐까?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내주는 것(자선)이 아니라

주님께 바치는 것(봉헌)이 될 때,
결국 주님의 축복으로 엄청난 기적을 이룬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행위는 같은데 말장난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자, 실제로 누군가를 돕고 서로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한번쯤은 실행해보고,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서로 나눈다는 것도 주님께 봉헌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자칫 자기 과시나 자기 만족에 빠지기 쉽다.
이런 태도일 때, 나누는 상대에게 도움이 아니라 상처를 주기가 십상이다.
또한 지속적인 사랑의 나눔이 되기도 어렵다.



진정으로 나누는 삶은 주님께 작은 것을 봉헌한다는 오롯한 마음가짐으로 행해야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양편 모두를 사랑으로 배불리고도 남아,

그 사랑의 기억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가
넉넉하고 지속적인 여분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선행되어야 혹시 큰 기적을 만든다해도 끝까지 겸손할 수 있다.

'너'에게 준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바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으면서도

결국 주님의 손으로 마무리하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겠는가.



또한 마르코에 나오는 이 기적에 관한한,

목자로서의 주님과,

양들인 우리와의 올바른 관계를 가르쳐주는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있다. 

푸른 풀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쉬게 하시며 먹여주시는 예수님은
시편에서(23장) 노래하던 우리의 목자, 바로 주님이시다.

곧 풀밭에 백 명씩, 오십 명씩 앉히고 먹이시는 구절은 
질서있게 양 무리를 관리하는 목자의 모습이다.

 

그분은 우리의 정신적. 영적 허기를 말씀으로 채워주시고

우리의 육신적 허기까지 실질적으로 배불리시는 주님이시다.

그러기에 ’인간 예수님’으로서만 그분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이 기적이 인간 서로의 나눔의 행위에 국한된다면

(그리고 성체성사의 상징으로서만 파악한다면......)


예수님의 신적 권능은 도무지 허무맹랑한

전설같은 기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 서로 나누어 큰 기적을 이룬다해도
결국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고 먹여주시는 분은,

목자이신 주님이시다.

이 대목의 서두에는

파견나왔다 돌아온 제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예수님께 낱낱이 보고하는 대목이 있다. 

그들이 아무리 큰 일(기적에 가까운 큰 일)을 이룩했어도,

그것 역시 파견하신 분의 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이것이 제자됨의 근본자세라는 것이다. 

많은 상징과 가르침이 숨어있는 '오천명을 먹이신' 이야기.

간단하게 말해버릴 일은 아닌 것 같다.

 

 

 

2005. 1. 6에 쓴 '기적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최근의 일화를 덧붙임. 

사진 출처: 문석훈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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